소프라노 이혜경씨 '펠덴크라이스 클리닉' 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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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소프라노 이혜경씨는 광화문 네거리를 지날 때마다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지난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김동진의 오페라 '심청전' 에 주역으로 출연했던 일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정부 초청으로 오페라 '오텔로' 의 주역을 맡은 후 화려하게 장식했던 국내 데뷔무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음악팬들은 거의 없다. 82년 축농증과 기관지염이 천식으로 악화되면서 무대를 등졌기 때문. 북독일에서 요양하면서 여러 차례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친 것은 83년 데트몰트 음대 오페라 담당 페터 야코비 교수의 소개로 모세 펠덴크라이스 (1904~84) 를 만났을 때부터.

펠덴크라이스는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으로 프랑스에서 노벨상 수상자인 졸리엇 퀴리의 조수로 활동한 핵물리학자. 유럽인 최초로 유도 유단자로 부상을 당해 무릎 절단의 위기에 직면했으나 인공지능.생물학 이론을 응용해 스스로 개발한 재활법으로 정상인처럼 다시 걷게 되었다.

그후 49년부터 자세교정으로 병치료를 돕는 '펠덴크라이스 메소드' 를 체계화해 전세계에 보급다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펠덴크라이스' 로 큰 효험을 본 이씨는 94년부터 쾰른에서 펠덴크라이스 제자에게 이를 집중적으로 배워 4년만에 메소드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함께 배우던 65명 중 3분의 2가 의사들이었고 피아노.클라리넷.플루트 교수와 무용수.조각가.테니스 선수.골프 교사.물리치료사도 있었다.

펠덴크라이스의 제자는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 다비드 벤 구리온,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 지휘자 이고르 마르케비치, 프로골퍼 릭 액튼 등 쟁쟁하다.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는 '펠덴크라이스' 로 무대공포증을 극복했다.

"걷는 모습만 보면 그 사람의 자세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어요. 자기 몸에 대한 자각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펠덴크라이스' 의 목적입니다. 부자연스런 동작과 자세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사용하게 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피로의 원인이 됩니다. " 자연스런 동작은 두뇌개발에도 도움을 준다. 의식, 즉 신경계를 자극하는 동작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것. 또 뼈의 잘못된 자세 때문에 근육이 부담을 느끼는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9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과 무용원에 출강해온 이씨는 지난 3월 서울압구정동 세실아카데미 (02 - 543 - 6752)에 국내 처음으로 펠덴크라이스 클리닉을 개설했다.

수강생중에는 성악가 김영미.송광선.김청자씨, 피아니스트 손희령.배예자 등 음악가 외에도 치과의사.학생 등이 참가하고 있다.

한백연구소장 공성진 (한양대) 교수도 '펠덴크라이스' 의 열렬한 팬. 골프 클럽에서도 이씨에게 강의 요청을 해오고 있다. 이씨는 기회가 닿는대로 독창회 무대에도 설 계획. '펠덴크라이스' 로 개발한 발성법과 호흡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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