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명곡20] 15. 힌데미트 '화가 마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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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치적 위기에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용감하게 맞서 싸워야 하나. 아니면 묵묵히 자신의 예술세계에 몰두해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치열한 모색이 '20세기의 바흐' 로 불리는 독일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 (1895~1963) 의 교향곡 '화가 마티스' 에 들어있다.

이 작품은 구상 중이던 오페라 '화가 마티스' 의 몇몇 악상을 교향곡으로 정리한 것이다.

34년 베를린필 음악감독으로 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위촉.초연했으며 오페라는 이듬해 7월 완성됐다.

푸르트벵글러는 오페라의 초연 지휘도 맡고 싶었으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 때문에나치 당국이 '퇴폐음악' 이라는 딱지를 붙여 무산됐다.

35년 모든 작품이 연주금지 당한 힌데미트는 터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오페라는 결국 38년 5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연됐다.

오페라보다 더 유명해진 교향곡 '화가 마티스' 는 1920년대에 재발견된 16세기 독일의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본명 마티스 고다르트) 의 생애를 빌어 독일 농민전쟁 당시 독일 자유주의 사상의 좌절과 실패를 다룬 작품이다.

이젠하임 수도원 제단에 그린 마티스의 그림이 현재 프랑스 콜마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화가 마티스' 의 각 악장도 '천사의 합주' '그리스도의 매장' '성 안토니우스의 시련' 등 마티스의 그림 제목을 부제로 달고 있다.

마티스는 '불온한 사상' 때문에 결국 추기경의 경제적 후원을 상실했다.

힌데미트의 작품에서 마티스는 농민군에 가담했으나 행동가로서는 실패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이젠하임 수도원 제단에 그린 걸작이 완성되자 마티스는 바깥 세상과 담을 쌓고 혼자 있고 싶어한다.

이 작품에서 힌데미트가 내린 대답은 결국 '비정치적 예술가' 로 남겠다는 것. 그러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힌데미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란 홍수를 피할 수 있는 노아의 방주가 아니다. "

◇ 추천음반 = ▶허버트 블롬슈테트,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데카) ▶볼프강 자발리쉬,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EMI) ▶레너드 번스타인, 이스라엘필하모닉 (DG)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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