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나는 미이라가 되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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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순선(1952~ ) '나는 미이라가 되고 싶다' 부분

(1연 생략)
거대한 산맥의 얼음 속에 파묻혀 해독할 수 없는 길을 열고 닫기 몇 천 년이던가 살(肉)이란 살은 바람이 다 발라먹고 뼈만 남은 옷 위로 청태가 낀 채 오랜 생과 죽음의 사이로 초원이 되어 흐르고 있다 유랑의 말발굽 소리와 코끼리가 죽북을 둥둥둥 울리며,

어차피 생이란 생각의 덫에 길러 빠져드는 것이라지만, 어느 생각 한 줄기 뿌리내린 적 없이 어설픈 잡목처럼 살아 왔던 나는 大英博物館(대영박물관) 한켠에서 천년의 잠에 든 여자를 보며 너무 오랜 세월 설잠으로 헤매어 온 나를 생각해 본다 나도 이제 불멸의 시간을 가둔 채 단잠에 빠져 미이라가 되고 싶다



현대인에게 가장 절실한 화두는 '잠'일 것이다. 바쁘다 바빠! 잠 좀 잤으면 하는 이 절실한 바람은 '미이라'를 통하여 그대로 드러난다. 잠의 종류-설잠.나비잠.꽃잠.단잠.쇠뿔잠.풋잠 등. 야! 시끄럽다. 잠 좀 자자!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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