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차관급회담 의미] '이산가족' 실마리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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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년 2개월간 중단됐던 남북한 당국대화가 재개의 실마리를 찾았다.

예정대로 3일 합의문 서명이 이뤄질 경우 남북한은 이산가족문제 등 오랜 숙제를 풀기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댈 수 있다.

또 한반도 냉전체제를 완화시키려는 정부의 구상도 좀 더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 재개 배경.의미 = 무엇보다 지난해 4월 베이징 (北京) 차관급회담 이후 단절됐던 정부 차원의 대화가 복원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

활발한 민간교류에도 불구하고 당국대화가 막혀 있어 정부로서는 부담을 느낀 게 사실이다.

또 정부가 다듬어온 포괄적 대북 접근 구상을 펼쳐볼 기회가 마련된다.

비료를 주고 이산가족문제를 풀어보자며 회담을 시작하겠지만 점차 격 (格) 을 높여 다른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대북 정책의 탄력적 적용이 효과를 거둔 첫 케이스라는 의미도 있다.

지난해 우리측은 비료를 주는 대신 북한이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미국의 페리 조정관 평양 방문에 따라 북.미관계 위주로 흘러가던 한반도 정세가 남북대화의 재개쪽으로도 힘이 실리게 됐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회담에 나선데 대해 "90만t의 대북 식량지원을 약속한 미국이 남북대화를 재촉하는 등 압박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 고 설명했다.

◇ 막후 접촉 = 정부는 올들어 북한과의 회담 재개를 위한 비공식 접촉을 시도해왔다.

2월 북측이 '하반기중 고위급 정치회담' 을 제의하는 등 긍정적 신호를 보내와 4월초부터 베이징에서 극비리에 막후접촉을 벌여왔다.

지난주 협상이 급진전돼 주말에는 남북회담사무국 손인교 기획부장이 정부 훈령을 들고 현지에 급파됐다.

30일 임동원 (林東源) 통일장관도 몽골로 날아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협상내용을 알렸다.

접촉은 베이징 근교의 한적한 호텔에서 진행됐으며 통일부.국가정보원 등의 핵심인사 몇몇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할 정도로 보안이 유지됐다.

◇ 전망 = 전문가들은 북한이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 전략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만큼 북측의 태도를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북한이 이른바 통미봉남 (通美封南.미국과의 교류로 남한을 봉쇄한다) 전략에 따라 남북대화를 북.미 구도에 종속시키려 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회담전례를 보더라도 당국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상당한 줄다리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료지원 물량에만 관심을 쏟을 북한이 이산가족문제 등에 얼마만큼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제시할지 여전히 미지수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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