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 수사] 검찰 수사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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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직 법무부장관의 부인을 조사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한 검찰은 지난 6일간을 '잊고 싶은 시간들' 로 회상한다.

그만큼 수사가 어려웠고 고통스러웠다는 뜻이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가장 고민했던 것은 고위층 부인들에 대한 조사방법. 특히 당사자 및 참고인들이 "언론에 얼굴을 공개하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며 버티는 바람에 소환과정에서 취재진과의 쫓고 쫓기는 첩보전을 펼치기도 했다.

김태정 법무부장관 부인 연정희씨도 "6월 딸 결혼식을 앞두고 사돈집 체면도 있는데 신경써 달라" 는 부탁을 간접적으로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延씨를 대검으로 불러 비밀리에 1차 조사를 마쳤으나 대질 때문에 부득이 서울지검으로 데려오다 '대역'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수사가 암초에 부딪친 것은 배정숙씨가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裵씨는 1차 조사 직후 병원에 입원, 폐렴증세까지 보였다.

裵씨는 두차례에 걸친 방문조사에서도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할 뿐 검사의 추궁에는 "가슴이 답답하다" 며 진술을 거부했다.

그러나 지지부진하던 수사는 정일순 라스포사 사장이 裵씨의 옷값 대납 요구를 입증하는 간접 증거를 털어놓음에 따라 활기를 되찾게 됐다.

검찰은 사직동팀의 조사 내용 가운데 일부가 언론에 흘러나오면서부터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延씨와 이형자씨간의 대질신문은 이번 사건의 '하이라이트' .지난달 31일 밤 고소인과 피고소인 자격으로 만난 두 사람은 시종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다 갑자기 서로 포옹, 수사팀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특수2부 검사 7명을 포함한 30여명의 수사팀은 수사가 시작된 지난달 28일 이후 한번도 귀가하지 못했다.

김수장 (金壽長) 서울지검장도 대책회의를 주재하느라 오전 1시쯤에야 청사를 벗어났다.

그래서 매일 밤 서울지검 청사에는 부인들이 보내온 속옷.간식 꾸러미의 공수 작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 검사는 "무조건 빨리 끝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하루 두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며 "보안에 신경쓰느라 밖에 나가보지도 못했다" 고 털어놓았다.

수사발표 당일인 2일에서야 수사팀 전원이 인근 목욕탕을 찾았지만 한 검사가 샤워중 잠이 들어 3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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