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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체육계 폭력 관행,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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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박철우 선수 구타 사건은 국내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주요 국제대회를 앞두고 군기를 잡는다며 코치가 선수에게 도를 넘어서는 체벌을 가했고 감독과 배구협회는 이 사태를 알고도 쉬쉬하며 덮기에 바빴다. 여론이 악화되자 협회 측은 부랴부랴 코치에 대한 중징계 방침과 함께 지도자 자질 검증, 주기적인 선수 면담, 구타 예방교육 실시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간 체육계에서 유사한 대책들을 내놨어도 크고 작은 폭행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자면 보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체육계의 폭력사슬이 초등학교 운동부 시절에 시작돼 국가대표가 된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 조사만 봐도 남녀 학생 선수 열 명 중 여덟 명이 지도자나 선배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는 걸로 드러났다. 그중 25%는 주 1~2회 이상, 5%는 매일 폭력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피해를 폭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간 운동을 그만두라고 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생 선수들이 학교 수업을 거의 받지 못해 운동 말고 다른 대안이 없는 현 상황에선 가혹한 폭력도 꾹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동 외에 다른 인생을 설계할 능력이 있어야 폭력에 맞설 수 있다”는 전 쇼트트랙 스타 전이경씨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학기 중 대회 개최 금지 등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더욱 확대해 어린 선수들이 ‘운동기계’로 전락하는 걸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함께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폭력 피해를 적발하기 위해 방문 상담, 인터넷 상담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폭력을 휘두른 지도자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물론 그 무엇보다 시급한 건 체육계 관계자들의 인식 전환이다. 대회 승리, 국위 선양 등 그 어떤 목표도 폭력이란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