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27.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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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제9장 갯벌

이튿날 해질무렵, 일행 세 사람은 벌써 중국의 산둥 (山東) 성 웨이하이 (威海) 시로 떠나는 여객선에 승선해 있었다. 당일로 인천에 도착했던 그들은 인천국제여객터미널 근처에 있는 허름한 여인숙에서 새우잠으로 하룻밤을 지새운 터였다.

세관을 통과해 승선한 뒤에도 그들이 자리잡은 곳 역시 지난밤에 묵었던 여인숙과 다름없는 삼등칸이었다. 그런가하면, 지저분하고 숨막히며 어디를 둘러봐도 불확실한 것도 지난밤과 다름 아니었다.

차이가 있다면 지난 밤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흔들리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봉환은 선실벽에 기대어 정박해 있는 선체의 미세한 동요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승선한 지 한시간을 넘겼는데도 뜸만 들이고 있을 뿐 출항의 낌새는 없었다. 태호는 승선하자마자 선실과 갑판을 분주하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진득하게 앉아 출항을 기다리지 못하고 주막집 강아지처럼 들락거리고 있는 태호에게 불안을 느꼈다. 그는 승선하는 길로 누울자리부터 찾았던 승객들을 차근차근 둘러 보았다. 개중에는 고린내가 등천하는 포대기를 이마 끝까지 뒤집어 쓰고 잠든 사람까지 있었다.

그런데 태호는 여전히 갑판과 선실을 쉴새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 역시 막연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불러세우고 까닭을 묻고 싶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는 손씨를 생각해서였다.

태호의 입에서, 만의 하나 범죄자를 색출하기 위해 출항이 보류되고 있다는 말이라도 떨어지면, 손씨는 기함해서 혼절해버릴지도 몰랐다. 세 사람이 연달아 갑판 위에서 곧장 바다로 뛰어내리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태호를 바라보고 있으면 혼란만 가중될 것 같아 눈을 감아버렸다. 불안했던 것은 손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태호가 보따리를 잃어버렸나? 길을 잃어버렸나? 아니면 열받을 일이라도 생겼나?" "저느마가 몽유병이 있는지, 본성이 한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하는 성미래요. " "불러서 물어나보지 그래?" "지가 알아서 하도록 쳐내삐러 놔 두시더. 설마 마른 하늘에서 벼락 떨어질라꼬요. "

"설쳐대는 조짐이 심상치 않아서 그래. 벌써 다섯번째인가 여섯번째인가 그래. " "지도 들락거리다가 다리 아프면 들어와 앉겠지요. 설마 바다에 거꾸로 떨어질라꼬요. " "우리 때문에 출항이 늦어지고 있는가 해서 나는 간이 콩알만해져 있구만. "

"배짱을 두둑하게 가질라카면, 다른 것은 고사하고 우선 간땡이부터 부어 있어야 하는데, 꺼꿀로 콩알만해졌다면, 그기 큰 일날 소리 아입니껴. 인제사 생각나는데…, 태호가 그머라 캅디껴. 궁더우 (工斗 : 중국을 드나드는 보따리 무역상들이 성행하면서 얻어진 중국식 이름. 궁더우로 불려지는 이들은 중국 현지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주문받은 뒤, 한국의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해 다시 중국으로 날라주고 귀국할 때는 그 곳의 농산물을 구입해 판매하는 보따리 장수들이다) 라 카는 조말자 (趙末子) 여사 만날락꼬 꽁지에 불붙은 똥개메치로 들락거리는 게 아인지 모르겠네요. "

"그러고보니 그 늙은이가 보이지 않구만. 이등칸에 탄 모양이지?" "지체가 그쯤되면 우리메치로 쭈글시럽게 삼등칸에 타겠습니껴. " 세 사람 소유로 통관시킨 보따리는 한 개도 없었다.

그들이 가지고 승선한 배낭은 모두 궁더우인 조말자 여사의 짐이었다. 세 사람의 신분이라면, 이른바 보따리 장수들 사이에선 다이궁 (代工) 이라 해서 남의 물건을 대신 운반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신종 짐꾼인 셈이었다.

조말자 여사는 태호가 수소문해서 만난 궁더우였는데, 얼른 보기에는 육덕 있는 오십대의 여자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육십세를 넘긴 늙은이었다. 세 사람이 웨이하이에서 팔 물건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조여사의 만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여사는 대중없이 덤비기만 하는 태호를 불러 앉히고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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