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잘못 된 민주화가 부패와 혼란 초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2호 34면

3년 만에 찾아간 베이징은 성큼성큼 뛰어가고 있었다. 12일 공항에서 나가자 새로 뚫린 6환(六環) 4차로 도로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건국 60주년에 맞춘 듯 이날 완전히 개통된 베이징의 여섯 번째 순환도로다. 총 187.6㎞. 서울∼금산(충남) 거리와 맞먹는다. 주변 6개 신도시를 연결하고 향후 20년간 1845억 위안(약 36조원)의 경제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한다.

이양수 칼럼

입을 쩍 벌리게 만든 것은 그 다음 얘기였다. “베이징∼톈진 고속순환도로인 7환을 계획하고 있는데 먼저 동쪽 부분만 건설할 것 같다.” 베이징대의 한 지인이 6환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들려준 말이다. 두 도시 간 거리가 120㎞임을 감안하면 총 750㎞의 반원형 도로가 생긴다는 얘기였다. 베이징∼톈진을 잇는 거대 경제권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다. 중국에선 이미 상하이와 광저우를 중심으로 두 개의 거대 경제권이 꿈틀대고 있다.

건국 60주년(10월 1일)을 앞둔 중국은 술렁이고 있다. 10만 명이 참여할 경축행사와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질 천안문광장 주변 도로들은 지난주에도 오후 시간이면 수시로 봉쇄됐다. 한 지인은 “계엄령(통행금지령)이 떨어졌다”며 시내 출입을 자제하라고 충고했다. 거리 곳곳엔 ‘신(新)문명 건설’ 구호가 나붙고 영화관에선 마오쩌둥과 장제스를 주인공으로 한 ‘건국대업(建國大業)’이 개봉됐다.

대학가 서점에선 문화혁명의 고통을 회고한 『칠십년대(七十年代)』가 베스트셀러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베이다오(北島:본명 趙振開·60)가 편집한 것이다. 언론매체들은 앞다퉈 특집·기획물을 통해 ‘부유한 강국’을 향한 꿈을 퍼뜨리고 있었다.

중산층이 많이 읽는 주간지 ‘삼련(三聯) 생활(生活)’의 주웨이(朱偉) 주편(主編:편집국장)은 “중국의 발전과 변화, 강대국으로 가는 길을 건설적으로 제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중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중국 전통문화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칭화대 국학연구원 천라이(陳來) 원장은 몇 차례나 “중국은 자신을 주체로 해서 세계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어와 문화를 보급하기 위한 공자학원(孔子學院)은 81개 국가에 둥지를 틀었다. 지구촌 곳곳에 중국 문화를 보급하는 소프트파워의 전진기지다.

중국은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건국-문화혁명-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파란 많은 현대사의 한 장(章)을 접고서다. 대국이 아니라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집단 결의’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대로 식·의·주를 해결한 중등 국가의 목표는 이미 달성됐다. 지난해 경제 규모는 세계 3위, 1인당 소득은 2770달러(약 335만원)였다. 한국에서 한때 유행한 ‘우리의 1년은 세계의 10년’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쾌속질주를 계속한 결과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 지식인들은 한국을 부러워했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한 성공모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영화와 TV드라마는 한국식 생활과 패션을 따라잡는 한류(韓流) 붐을 낳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베이징의 일부 학자는 기자에게 “한국과 대만은 잘못된 민주화 때문에 부패와 혼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과격한 시위와 파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중국의 보수파 지식인들은 공산당 통치체제를 의식한 탓인지 한국을 따라가선 안 될 발전 모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미·중 양국이 지구촌 현안들을 주무르는 G2 시대는 더 이상 미래형이 아니다.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18일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반도 역시 ‘차이나 파워’의 무대가 되고 있다.

경제가 가장 발전한 광둥 지역에는 아프리카·서남아 출신 불법 체류 노동자가 몰려들고 있다. 중국도 이제 ‘이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베이징에서 10여 년간 한식당을 해온 40대의 김모씨는 “이 속도로 10년만 더 가면 중국에 와서 일자리를 찾는 한국인 이민노동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뛰는 중국 옆에서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한국의 현실을 한탄하면서였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 거리는 도쿄·홍콩을 무색하게 할 만큼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중국 대륙을 10년 전, 5년 전의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하면 된다’는 정신을 역(逆)수입해야 할 정도로 세상은 바뀌었다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