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이 부부를 뜨겁게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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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앞뒤 안보고 무조건 절대적인 도덕률을 앞세우는 사람을 보면 넌더리가 난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러쿵저러쿵 훈계를 늘어놓는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음식을 시켜 먹거나 밤샘을 하거나 아들을 내 침대에서 재우는 따위의 일에 대해서 말이다.

Married, With Lie s
부부 간에 100% 진실만을 말한다면 과연 백년해로가 가능할까

하지만 내 인생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는 이런 행위를 해야 한다. 물론 왜 그런 습관을 들이면 안 되는지는 안다. 하지만 한밤중에 치킨을 시켜먹는다고 모두 나쁘다고 하겠는가? 요즘엔 거짓말이 인간관계에 얼마나 나쁜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만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거짓말 없이는 결혼생활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부부가 서로에게 항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면 이혼율이 급증하고 연인들이 결혼에 성공할 확률도 크게 떨어진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는 사람끼리는 100% 정직하긴 어렵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신경을 자극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 뿐 아니라 아기의 지저분한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 일요일 아침에 일찍이 배관공을 부르는 일, 소득세 신고서를 쓰는 일 등 함께 할 시간이 널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부 사이에 거짓말을 삼가란 소리는 부부 사이에 밤일을 하지 말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거짓말이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간통, 대학교 때 애인과의 ‘섹스팅,’ 경마장에서 회의 중이라고 둘러대기, 멀쩡한 부모님을 놔두고 배우자한테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행위 등은 용납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악의 없는 거짓말이다. “더 날씬해졌네” 라든가 “당신 말이 맞아. 그 직장 상사는 멍청이야”라든가 “당신 친구를 만나는 게 즐거워” 라는 식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01. 부부는 항상 배우자의 속마음을 예단하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고백을 받으려 한다. 그 대응책은 거짓말뿐이다. 실제로 속마음이 그렇다면 더더욱 그렇다.

오래 전 우리 부부에게 홀&오츠 콘서트 티켓이 생겼다. 나는 홀&오츠 팬이다. 그러나 콘서트가 열리는 날, 남편이 병으로 쓰러져 며칠간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다. 자금까지도 남편은 내가 자신을 병원 응급실로 보내놓고 혼자서만 콘서트에 가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남편에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까도 생각했지만 당신이 더 소중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하겠다.

하지만 배우자한테 그렇게 말하긴 어렵다. 내가 그렇게 큰소리 치면 남편은 거꾸로 이렇게 받아들인다. “당신을 응급실에 던져 놔야 했어. 당신이 죽든 살든 홀&오츠의 음악을 듣는 게 내겐 훨씬 더 중요하거든.” 그래서 나는 이렇게 거짓말 한다. “내게는 당신이 가장 중요해. 당신이 건강해야 나도 행복하거든.”

아, 공개적으로 어떻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게 여긴다면 그 답은 간단하다. 이번 주엔 칼럼을 쓰지 않았다고 거짓말 할 생각이니까. 반대로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남편한테서 내가 만든 칠리를 싫어한다는 말을 유도해내려고 애써 왔다. 나는 남편이 그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안다.

왜 그렇게 확신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남편이 그걸 먹을 땐 ‘이건 아닌데’하고 여기는 듯하다. 남편이 거짓말을 한다면(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단지 내 감정을 존중해서 그러려니 하면서 모른 척해야 맞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남편이 어느 순간 무심결에 본심을 내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낮없이 “내 칠리 맛 어때?”라고 묻는다.

여기저기서 칠리를 주문해 먹으라고 권할 때마다 남편은 “당신 게 더 맛있어”라고 말한다. 그때마다 난 꼬치꼬치 캐묻는다. “어떻게 좋은데?” “내 게 왜 좋은데?” “무인도에도 가져갈 거야?”라고. 내가 지금까지 만난 부부들도 둘 중 하나는 나와 비슷하다. 친구가 부인 또는 남편에게 “테니스 복식 경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라든가 “내 향수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잖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잖은가? 그동안 상대방를 배려해서 거짓말을 해왔다는 얘기다.

02. 끊임없이 말에 담긴 의미에 신경 써야 한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부부에게 닥치는 불행 중 하나는 칭찬을 바라지도, 하지도 않는 것이다. 하루는 짧다. 회사 일, 아이들 뒷바라지, 가사, 그리고 딴 사람들의 일에 신경 쓰다 보면 “내 사랑은 당신뿐이야” 라든가 “당신은 예뻐”라고 말해주기는커녕 아침 저녁으로 인사할 시간조차 없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날 빨간 옷을 입고 당신의 분신에게 “예쁘냐”고 묻기는 너무 늦다. 왠지 쑥스럽게 여겨진다. 그런 쑥스러움에서 벗어나려면 부부는 똑 같은 말이라도 엉뚱한 질문이 필요하다. 예컨대 본심은 “당신과 사는 동안 내가 매력이 없어졌어?” 라고 묻고 싶어도 “이 옷 어때? 나 뚱뚱해 보여?”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런 까닭에 본디 사실이 아니어도 늘 “아니야”라고 대답해야 한다. “맞아”라고 답했다가는 예외 없이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누군가는 소파에서 자야 하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03. 감정 발산을 위해서도 거짓말은 필요하다.

한 사람과 오래 살다 보면 나중에는 불가피하게 신경이 곤두서는 일도 있다. 자신이 부처이건 배우자가 공자이건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매일 하는 행동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예컨대 남편은 내가 집안 곳곳에 옷을 아무데나 벗어놓는 걸 싫어한다. 나는 남편이 내 아이팟 액세서리를 허락 없이 사용하는 걸 참지 못한다.

두 성인이 함께 살다 보면 숱하게 겪는 일이다. 한 쪽이 식사할 때 칼로 접시 긁는 소리를 내거나 상대방이 잠들기 전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부인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꿋꿋하게 재활용에는 무관심한가 하면 남편은 거실이 남자의 성역이라도 되는 듯 남이 리모컨을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려면 진실을 말하기 보다 자신의 감정을 과장해서 드러내는 편이 낫다. 예컨대 남편은 내 옷을 챙겨서 가지런히 정리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다음 번에 또 당신 바지가 굴러다니는 걸 보면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버릴 거야.”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할 성싶다.

“내 아이팟 충전기를 또 가져갔다간 당신을 박스에 넣어서 볼리비아로 보내버릴 테야.” 물론 다 거짓말이다. 아무도 8월엔 볼리비아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큰 싸움으로 커져서 울고불고 하거나 서로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고집부리며 옥신각신하지 않고 사소한 짜증을 표현하는 길은 그뿐이다.

나는 극단적으로 솔직한 인간관계를 동정한다.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절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결혼생활엔 어느 정도 환상이 필요하다. 커다란 속임수나 복잡한 음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애팔래치아 산에 있다”고 둘러대고 아르헨티나에서 애정행각을 벌인 마크 샌포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보라).

남녀 관계엔 처음 만났을 때의 뜨거운 열정을 대신할 거짓말이 필요하다. 그런 열정이 불타 올라 연인관계로 진전되겠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려면 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

RAINA KELLE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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