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속 빛난 '침착한 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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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선장의 침착한 판단이 90년 전 '타이타닉' 호 비극의 재연을 막았다.

20일 오후 3시. 선 비스타호의 선장실 비상전화가 숨가쁘게 울어댔다.

스벤 버틸 하프젤 선장이 막 파이프 담배를 피워물던 참이었다.

엔진실에 불이 났다는 보고였다.

하프젤 선장은 승객들의 동요를 우려, 비밀리에 화재를 진압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불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15분 뒤 엔진실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유람선 후미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고 편안한 오후를 즐기던 승객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화재가 진압될 무렵 이번에는 유람선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승무원들이 방화수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 배가 물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를 포기하느냐, 물을 뽑아내느냐. 하프젤 선장은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야 했다.

하프젤은 안내방송 마이크를 잡았다.

승객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구명정이 충분하니 동요하지 말것을 당부했다.

수억달러에 달하는 배보다 1천명이 넘는 승객의 생명이 우선이었다.

승객들은 너무도 의연한 선장의 목소리에 흐트러진 정신을 수습했다.

갑판은 질서를 되찾았다.

일부 승객은 찬송가와 함께 영화 '타이타닉' 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하프젤 선장은 마지막 승객이 구명정에 옮겨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몇명의 승무원과 함께 배에 남아있는 승객이 없음을 확인한 뒤 구명정에 발을 디뎠다.

너무도 침착했던 하프젤 선장의 옷은 식은 땀으로 온통 젖어있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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