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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갈 만한 곳은 한국뿐” “지수 상승 속도 너무 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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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국인들은 말 그대로 한국을 사고(Buy Korea) 있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인의 폭발적 매수세에 대해 17일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기관들조차 그 규모에 당황스러워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장중 한때 1704까지 급등했다. 그러다 국내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낸 탓에 지수는 전날보다 12.14포인트(0.72%) 오른 1695.47로 마감했다. 전날 사상 세 번째 규모인 9079억원을 순매수했던 외국인들은 이날도 7650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외국인들은 이날까지 10일 연속 ‘사자’ 행진을 벌였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매수세가 이어지며 원화 값도 덩달아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6.5원 떨어진 달러당 1204.8원을 기록했다.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 돈을 쏟아붓는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달러의 약세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로 ‘닥터 둠’으로 불리는 마크 파버는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강연하면서 “달러화 가치는 아마 제로(0)로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미국의 재정적자가 커지고 있어 달러화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달러 자산에 몰려 있던 자금이 아시아 등 신흥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 돈이 아시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곳이 한국이라는 것이다. 장인환 사장은 “일본은 아직 회복이 덜 됐고, 중국은 닫힌 시장이라 아시아에서 돈이 갈 만한 곳은 사실상 한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있고, 이들의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는 점도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이 환차익에다 투자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는 ‘안전시장’으로 부각된다는 뜻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대형주들이 튀어 오르면서 삼성전자의 주가는 이날 81만원을 돌파했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정보기술(IT)·자동차에 집중되던 외국인 매수세가 최근에는 금융과 내수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면서 “‘바이 코리아’의 전형이었던 2003~2004년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다음 주 우리 증시가 파이낸셜 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의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는 것도 ‘바이 코리아’에 가속도를 더해주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심재엽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선진국 지수 편입에 따른 신규 자금 유입 규모는 최소 12조원에서 최대 3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수가 너무 단기간에 빠르게 오른 탓에 증시의 부담감도 커졌다. 원화가치 급등으로 지수 상승을 이끌어온 수출기업들의 실적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운용 부사장은 “여건이 좋다고는 하지만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며 “원화 값이 급격히 상승할 경우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둔화돼 조정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산 버블을 경계하는 지적도 나오기 시작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단기 자금의 증가세가 아직 자산 시장의 과열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면서도 “확장적 통화정책이 장기화할 경우 자산가격의 급등락에 따른 경기 불안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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