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이세돌의 소리없는 급소 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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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제2보 (22~40)]
黑.이창호 9단 白.이세돌 9단

이창호9단이 바쁘게 걷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비호처럼 달리는 모습은 더욱 그렇다. 테니스나 족구를 할 때도 이창호의 폼은 느릿하다. 강스매싱은 아예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 판에서는 이창호가 잰걸음으로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다. 좌상귀에 이어 좌하귀마저 도려내고 우상귀를 27로 지키자 흑은 어언 사귀생. 전략가 이창호가 상대방의 실리취향을 역으로 들고나와 심리전을 꾀하고 있는 것인가. 예전엔 이렇게 네 귀를 차지하면 으레 이기는 것으로 알았다. 요새는 반대로 '사귀생 통어복이면 필패'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중앙과 변의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세돌9단은 28로 모자를 씌운다. 막막하고 공허하다. 말하자면 우주류다. 실리파 이세돌이 우주류라니! 사실은 이창호 쪽에서 워낙 실리를 챙겨가버리니 백은 부득이 우주류 비슷하게 중앙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29로 또 실리를 취했다. 그러나 이 수는 너무 심했다고 이창호 본인도 반성했다. 우변을 지켜두는 게 정수였다는 것이다.

이창호에게 뼈저린 후회를 안겨준 수는 바로 36이다. 이 수의 기막힌 타이밍이 빠르게 달리던 이창호의 뒷다리를 조용히 걸어버렸다.

'참고도' 흑1로 받으면 백6까지 사방으로 이용당한다. 그게 싫어 37로 버텼으나 이번엔 38의 천재적인 감각이 등장한다. A의 삶과 B의 연결을 노리는 이 한 수에 이창호의 얼굴에도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응수가 궁하다. 계속 기자니 괴롭다. 실리란 역시 맛있지만 위태로운 존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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