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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44주년 중앙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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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김지숙-

일러스트=김영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한 블록 정도 온 길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 길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만고만한 옷가게와 식당과 커피숍이 줄지어 있었다. 길치인 나에게 바둑판처럼 길이 난 명동 번화가는 최악의 공간이었다. 큰 건물을 잘 봐두면서 걸어야 했건만,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안 건 이미 마구잡이로 걸은 뒤였다.

그래도 저만치 코너만 돌면 스타벅스가 보일 것도 같았다. 나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거기도 아니었다. 별 수 없이 이 길 저 길 왔다 갔다 해 보았다. 점점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조했다. 이런 식으로 족히 이십 분은 헤맸다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 부족한 공간 감각이 원망스러웠다.

이십 분 전, 나는 스타벅스에 있었다. 지금도 그곳에는 소개팅으로 만난 스미스가 앉아있을 것이었다. 그가 시킨 아메리카노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을 것이고, 옆 테이블의 나이키 모자를 눌러쓴 청년은 이미 누군가를 만나 자리를 떴을 것이었다. 어째서 휴대폰도 들고 나오지 않은 건지, 지갑만 손에 들고 있는 내 꼴이 한심스러웠다.

나는 별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 방향도 모른 채 계속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선을 다해 내가 서 있는 곳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선인장’이라는 이름의 옷가게가 보였다. 쇼윈도에 세 벌의 흰 블라우스가 걸려 있는, 장식을 최소한으로 줄인 가게였다. 나는 맨 오른쪽의 블라우스에 눈길을 주었다. 가슴과 소매에 프릴이 달려 있었다. 예전부터 사려고 마음먹었던 스타일이었다. 다음 주에 있는 직원회의에 입고 간다면…….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차! 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오 분 전 즈음에도 저 블라우스에 눈길을 주었다는 사실. 그리고 저 옷을 입고 회의에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블라우스와 잘 어울릴 검은 재킷에 대해서도 생각했다는 사실. 나는 의아했다. 어째서 이런 것들은 모두 기억하면서 내가 온 길은 하나도 기억할 수 없는 건지.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길을 잃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인장’ 옷가게의 맞은편에는 ‘형제슈퍼’가 있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도 같은 이름의 슈퍼가 있었다. 나는 그 슈퍼에 자주 가곤 했는데 그 슈퍼에서 단종된 과자를 팔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물건들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선반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시간의 흐름이 그곳에만 멈춰버린 듯한 느낌. 한 번도 가게주인에게 그 물건들을 어디서 들여오는 것인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 아직 유통기간이 지나지 않은 단종된 물건들을 만드는 공장이 어딘가에 있거나, 망한 회사의 사장과 슈퍼 주인이 정말 형제일 수도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형제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이곳에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과자나 음료수를 팔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보았지만 보통의 슈퍼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뭐 찾아? 가게 안을 서성거리는 나에게 가운데머리가 벗겨진 가게주인이 물었다. 나는 가게주인 뒤로 미닫이문이 달린 냉장고 안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먼저 캔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물, 물 주세요, 하고 말했다.

나는 늘 목이 말라 음료수를 달고 사는 편이었다. 특히 차가운 커피를 많이 마셨다. 그래서 잠을 설쳤고 피부가 버석거리며 기운이 없었다. 다시 말해 아이스커피의 카페인 때문에 불면에 시달렸고, 그 불면으로 오는 피로를 떨쳐버리려고 다시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나날에 시달렸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런 악순환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단지 결정적인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물방울이 맺힌 생수병을 손에 쥐며 나는 커피의 유혹을 물리친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러면서 선명하게 정리되는 바가 있어 아! 하고 외쳤다. 내가 스타벅스에서 나온 것도 다 이 물 때문이었다. 스미스가 자기 몫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나를 향해 무엇을 마시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창 밖으로 보이는 정수기 대리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포스터 속에서 물이 든 유리잔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여배우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카페인과 불면의 악순환이 나의 인생에 초래할 악영향을 그 언제보다도 강렬하게 깨달았고, 지금이야말로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스미스에게 포스터를 가리키며 아뇨, 전 나가서 저기 저 물이나 좀 사올게요. 하고 말한 뒤 스타벅스를 나왔던 것이다.

가운데 머리가 벗겨진 가게주인이 물을 사고도 떠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아저씨, 이 주변에 스타벅스가 어디에 있지요?

-어디 있긴. 나가면 바로 앞에 있어.

-어느 쪽 앞이요?

가게주인은 내가 온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첫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바로 스타벅스가 있다고 했다. 이럴 수가! 나는 형제슈퍼를 나와 가게주인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역시 스타벅스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친절한 미소의 점원이 나를 보면서 어서 오세요, 스타벅스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스미스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내가 앉아 있던 긴 소파에는 세 커플이 한 테이블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이키 모자를 쓴 청년이 앉아 있던 자리는 역시 비어 있었다.

스미스가 겨우 이십 분도 못 기다리고 가버렸다고 생각하자 섭섭하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십 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십 분은 아주 짧은 시간이기도, 아주 긴 시간이기도 했다. 테이블 위에 커피 두 잔을 시켜놓고 한 두 시간은 예사로 보내는 연인들에게는 찰나와 같은 시간이었다. 반면에 천이백 원짜리 햄 토스트를 시키고 이십 분이나 기다리게 된다면 정말 화가 날 시간이었다. 아마 돈을 환불받아 그냥 토스트 가게를 나가며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를 이십 분이나 세워놓다니, 러닝머신을 이십 분 동안 뛰었다면 하루치의 운동량이라고! 스미스에게 나를 기다리는 이십 분은 어느 쪽이었을까. 그 답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스미스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질 만큼 많은 것을 알지도, 갖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스미스는 나의 직장 상사의 시누이의 후배였다. 약간 복잡하지만 소개팅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 친구의 친구, 친구의 선후배, 친구의 군대동기. 뿐만 아니라 친구의 친구의 친구, 직장동료의 전 직장 후배, 그러니 상사의 시누이의 후배와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소개팅이었다.

어쨌든 직장상사가 시누이의 말을 빌려 내게 준 정보에 의하면, 그는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고, 국내 유수의 기업에 픽업되어 한국으로 들어왔다. 스미스는 유학시절 쓰던 그의 영어이름이었다. 한 달 전 스미스와 소개팅을 한 뒤로 이번이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난 셈이었다. 나는 ‘이십 분’이라는 시간에 이어서 ‘다섯 번째 만남’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다섯 번이면 서로를 안다고 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한 횟수였다. 하지만 서로에게 호감이 있음은 충분히 드러나는 횟수이기도 했다.

스미스는 지난 다섯 번의 만남 동안 약속시간을 잘 지켰고, 늘 정장을 입고 나타났으며, 등을 곧추 세우고 앉았다. 대화의 주된 소재는 회사에서 맡고 있는 그의 업무에 대한 것이었다. 또 스미스는 늘 스타벅스를 찾았다. 샤브샤브를 먹고 스타벅스에 가거나 스테이크를 먹고 스타벅스에 가거나 식사시간이 애매하면 스타벅스에 들른 뒤 한식집으로 가기도 했다. 미국 유학시절 스타벅스에서 공부를 하던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그의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은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를 찾아주었다. 스타벅스는 어디에나 있었고 나는 달리 갈 곳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이 내가 스미스에 대해서 아는 전부였다.

소개팅에서 다섯 번째 만남까지 가는 확률은 내 경험상 이십 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조리 관련 학과를 나온,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식품회사를 다니는 까닭에 나는 남자와의 만남을 거의 소개팅에 의존했다. 주변에 남자가 없는 대신, 남자를 소개해줄 인맥은 다행히 차고 넘쳤다. 덕분에 소개팅에 대해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었다. 첫 만남에서 서로가 싫다는 확실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보통 두세 번까지는 상대를 만났다. 한 번의 만남으로 상대를 다 판단하지는 않겠다는, 일종의 인간적 예의인 셈이었다. 그러나 두세 번의 만남 뒤 연락이 끊어지면 바로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삼 주만 지나면 길에서 마주쳐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니 소개팅을 다섯 번째 만남까지 이어가는 건 특별한 경우였다. 그렇게 되려면 자신을 100%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서 150%로 끌어내서 ‘캐릭터’를 구축해야 했다.

예컨대, 내가 ‘목장갑’이라고 불렀던 남자가 있다. 그는 친구가 아는 사람의 후배인 은행원이었다. 남자는 소개팅 하는 날 목장갑 한 묶음을 들고 나타났다. 스무 개 정도의 목장갑이 노란색 노끈에 묶여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오토바이 뒤에 목장갑을 싣고 가던 사람이 한 묶음을 떨어뜨렸는데 아무도 안 가져가서 자기가 집어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목장갑을 통째 선물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기념으로 하나만 가졌다. 내가 그에게 사귀고 싶을 정도의 호감을 느끼지도 않았으면서, 그래도 꽤 오래 그를 만난 건 순전히 목장갑 때문이었다. 어색할 때면 목장갑 얘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남자의 성격이나 외모는 잊었어도 그 목장갑만큼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데카르트’라고 불렀던 남자도 있다. 그는 대답을 유독 느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철학과에 다니던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 역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였기에 다섯 번의 만남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듯 기억에 남는 것은 단편적인 사건이나 순간일 뿐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연약한 정보들 중에 특정한 사건이 가져온 캐릭터만 점자책의 문자들처럼 오돌오돌 튀어나와 각인되는 것이었다.

일러스트=김영윤

나 역시도 소개팅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상대방의 나이나 직업에 따라서 평소에 잘 입지 않는 프릴 달린 원피스를 입기도 하고, 심하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가기도 했다. 호탕한 여자로 보이고 싶어서 과도하게 웃기도 했고, 정숙하게 보이기 위해 짧은 대답과 미소만 던지는 날도 있었다. 오가는 이야기도 달랐다. 정치성향이 분명한 사람을 만나서는 차기 대선후보나 부동산 정책의 허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예인 지망생을 만나서는 가요계 동향이나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를 나눴다. 은행원을 만나면 유행하는 금융상품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심지어 즉석에서 적립식 펀드에 가입한 적도 있었다. 나는 마치 어떤 캐릭터도 거부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신인배우와 같았다. 누군가에게 나도 단편적인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때로는 묘한 기분이 들곤 했지만. 나도 그들에겐 선물받은 목장갑을 끼어보던 여자, 자기와 비슷한 중도좌파의 정치성향을 가진 여자, 물을 사러 스타벅스를 나간 뒤에 실종되어 버린 여자로 기억될 것이었다.

나는 스타벅스 테이블에 앉아 일렬로 놓인 세 테이블의 연인들을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또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똑같이 생긴 일회용 컵들이 테이블 위에 두 개씩 마주 놓여 있었다. 카페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 카페모카와 화이트 초콜릿 모카, 카라멜 마키아또와 카라멜 카페라떼. 변주곡처럼 비슷한 이름과 향기의 커피들이 저 안에 담겨 있을 것이었다.

내 바로 옆에 앉은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존댓말의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대화가 끊길 때에는 대화거리를 찾느라 애쓰는 것이 옆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소개팅 한 남자들과 꽤나 많이 스타벅스에 드나들었다. 스타벅스의 자본이 전쟁기금으로 쓰인다며 스타벅스를 비판하는 어떤 남자와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스타벅스에 갔었다. 그러고 보면 스타벅스는 모든 소개팅의 거의 유일한 접점이었다.

사실, 처음 길을 잃었을 때부터 계속해서 떠오르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내가 ‘스미스’라고 불렀던 또 다른 사람이었다. 길을 헤매는 내내 그 ‘스미스’가 떠오른 것은 그가 길을 잘 찾는 남자였기 때문일 터였다. 나는 그를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그는 소개팅으로 만나서 사귀는 사이로까지 이어진 몇 안 되는 남자 중의 하나였다. 아니, 사귀었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사귄 지 오 일 만에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가 ‘스미스’가 된 것은 영화 매트릭스3을 함께 보고 난 뒤였다.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은 몸이 수십 개, 수백 개로 분화되어 여기저기 출몰하면서 주인공인 네오를 제압했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는지 그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내 왼쪽과 오른쪽으로 몸을 빠르게 옮기며 스미스 요원 흉내를 냈다. 그렇지만 그가 결정적으로 나에게 ‘스미스’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내가 길을 잃어버린, 사소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은 뒤였다.

그와 만날 때에도 나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서울의 한 재개발지구에 있는 비빔밥집에 갔을 때였다. 비빔밥집이 오래된 건물에 있어 건물 내부에 화장실이 없었다. 건물 밖에 딸린 화장실에는 누군가 들어가 있는 상태였고, 볼일이 급했던 나는 다른 화장실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몇 블록을 가도 낡은 건물만 나오고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욱 급해졌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허물기 직전의 낡은 건물을 지나쳐 나온 한 주상복합건물에서 겨우 화장실을 찾아냈다. 그러나 잠시 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왔을 때 그 공간의 낯설음이란!

나는 이미 그곳이 어딘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정신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십분 쯤 헤매었을까, 코너를 돌았을 때 내 가방을 들고 있는 ‘스미스’를 발견했다. 그는 내가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도처에서 나타나는 영화 속 스미스 요원 같았다. 나는 반가움에 있는 힘껏 달려갔다. 달려가는 도중에 화장실을 찾느라 여기까지 온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에게 달려가던 순간이 점자책의 글자들처럼 솟아올라 나는 당혹스러웠다. 내가 그와 사귄 것이 순전히 그가 길 찾는 데 놀라우리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정말이지 그는 나와 달리 길을 무척 잘 찾았다. 마치 한때 동네주민이었던 것처럼 어디를 가든지 복잡한 곳을 서슴없이 걸어 다녔다. 약간 허풍 섞인 행동이기는 했지만 해를 보고 양팔로 방위를 맞추기도 했다.

한번은 그와 함께 선유도 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표지판도 없는 골목길을 그는 이리저리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한강 앞으로 나를 안내했다. 어떻게 이렇듯 길을 잘 찾지? 하고 묻자 그는 그냥 알아, 하고 말을 이었다. 이를테면 위에서 본다고 생각하는 거야. 뉴스에서 보면 헬기를 타고 밑을 보듯이 그런 느낌으로 걷는 거지. 그게 어떤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헬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길이 아니라 길과 길 사이를 메우고 있는 건물을 보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와 나는 새로운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기분으로 만남을 가졌다.

일러스트=김영윤

그런 그가 갑자기 사라진 건 충격이었다. 정식으로 사귄 지 오 일째 되는 날부터 그의 연락은 끊겼고, 휴대폰도 꺼져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랬다. 나는 답답했다가 화가 났다가 그저 멍해졌다. 꺼진 휴대폰에 백이십 번 정도 전화를 한 뒤에야 내가 이렇게 전화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에 휩싸였다. 과연 내가 그럴 입장은 되는 걸까, 싶었던 것이다.

나중에 친구를 통해서 들은 얘기로는 그의 부모도 사라진 그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뿐 아니라 친구들로부터도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부터 사실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몇 가지 소식을 전해들을 뿐이었다. 그러나 친구의 친구도 아닌,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너무나 멀었다. 그러나 나는 그 뒤로도 한 달 간 꺼져 있는 그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일종의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으며 슬프기보다는 얼떨떨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부터 나는 그의 실종을 놀라우리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마저 떠올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뒤 언젠가, 신원 미상인 남자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발견된 것은 토막살인 된 사체의 일부분이었다. 나는 문득 저 살해당한 자가 그라면 내가 장례식장에 가야하는 걸까, 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 생각조차 얼마 안가 잊고 말았다. 나중에 친구를 만났을 때 그의 소식을 슬쩍 물어보았지만 친구는 그게 누군지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친구가 나에게 혹시 그와 사귀었던 거냐고 뒤늦게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끔, 소개팅을 한 사람의 소식을 한참이 지난 뒤 듣게 될 때가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소개팅으로 만난 연예인지망생이 정말 가수로 데뷔해 우리 동네 나이트클럽에 초대가수로 온 적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이 새겨진 클럽 전단지를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이십대 초반에 소개팅한 남자가 스물아홉에 설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제 나와는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설사 사라진 스미스의 소식을 듣는다고 해도 그들과 다를 바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벽에 걸린, 커피농가의 한 아프리카 여인이 밝게 웃는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갱의 그림에 나오는 타히티 여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었다. 문득 사라진 ‘스미스’가 세계 어딘가의 내가 모르는 스타벅스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건강하고 관능적인 여자와 함께 카페라떼를 마시는 장면이 상상되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스타벅스는 세계 도처에 있으니까.

이십 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미스가 가버린 거라면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점원에게 가서 혹시 가방이나 메시지를 남겨놓은 사람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혹시 스미스가 맡겨놓고 가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초록색 앞치마를 한 점원은 다른 점원들에게 뭔가 묻는 것 같더니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할 수 없이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밖이 비치는 스타벅스 풍경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는 유리창으로 보였던 길 건너편의 정수기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맞은편에 있는 가게들을 훑어보아도 나를 스타벅스 밖으로 뛰쳐나가게 했던 정수기 대리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스타벅스 안을 다시 유심히 보았다. 정말이지, 스미스를 만난 스타벅스와 미묘하게 달랐다. 세부적인 것들은 같았다. 검은 피부 여자의 사진과 텀블러 판매대, 탁자에 놓인 2% 밀크와 훌밀크 병, 시나몬 가루와 초콜릿 가루 병까지 모두 똑같았다. 칠판에 쓴 글씨체까지 흡사해 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배열이 조금씩 달랐다. 마치 같은 내용물을 큰 통 속에 넣고 흔들다가 흩뿌려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점원에게 주변에 또 다른 스타벅스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점원은 여기는 명동역점이고 십분 정도 거리에 다른 스타벅스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점원이 그려준 약도를 들고 스타벅스에서 나왔다. 허겁지겁 스타벅스 직원이 표시해준 곳으로 달려갔다. 롯데백화점, 아바타 쇼핑몰, 영화관이 순서대로 나왔다. 물을 사러 나온 지 벌써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스미스에게 할 변명을 생각했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땀에 번들거렸다.

큰길로 들어서자 거리는 걷기 힘들 정도로 혼잡했다. 노점상들로 가뜩이나 길이 좁아진 데다 어디선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사람들과 상점들로 넘쳐났다. 외국인들도 많았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해외관광객이 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귓가로 여러 나라 언어가 스쳐 지나갔다. 일본인이 쇼윈도에 걸린 옷을 보고 뭐라고 말하자 일행이 가와이, 가와이를 연발했다. 화장품 가게의 직원들은 가게 입구에 서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쓰며 판촉을 하고 있었다.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조차 헷갈렸다.

한 여자가 액세서리 자판 옆에 앉아서 김이 나는 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허기가 밀려왔다. 칠 센티미터 굽의 구두를 신고 걸은 탓에 발목이 시큰거렸다. 원피스 안감은 땀에 젖어 자꾸 허벅지에 휘감겼다. 종아리 근육도 단단하게 뭉친 게 느껴졌다. 나는 사람들과 노점상을 피해 몸을 움직였다. 사람과 물건으로 꽉 들어찬 이 거리에서 내가 갑자기 증발을 해도 대수롭지 않은 일일 것 같았다. 중국인 관광객 한 무리가 내 쪽으로 몰려왔다. 그 중 한 명이 나에게로 와서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어설픈 한국어로 물었다. 여기 어떻게 갑니까? 중국인이 짚은 곳은 명동역 부근의 한 음식점이었다. 나는 뭔가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그들과 나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꽤 많이 걸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즈음 드디어 스타벅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 층짜리 거대한 스타벅스였다. 그러나 그건 내가 찾는 스타벅스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기분이었다. 소개팅을 주선한 상사에게 전화해서 스미스의 전화번호를 알아낼까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소개팅 해준 남자의 전화번호를 얻기 위해 토요일 오후에 상사에게 전화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일단 집에 가서 전화번호를 알아낸 다음에 사정을 대충 이야기하고 다음에 밥이라도 사면서 가방을 받으면 될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 택시를 잡으려는데 가방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이 떠올랐다. 화장품, 연애심리에 대한 책 한 권, 사적인 이야기가 적힌 다이어리, 필기구, 핸드폰, 엠피스리, 탐폰 한 통, 콘돔 두 개. 가방에 든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니 가방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본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뭔가 게임에서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일러스트=김영윤

나는 우선 스타벅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점원에게 이 주변에 다른 스타벅스가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점원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어떤 스타벅스를 찾으시나요? 명동에만 일곱 개의 스타벅스가 있는데요. 나는 비로소 스타벅스가 어디냐고 묻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가운 얼음이 섞인 카페라떼가 먹고 싶었다. 카페인이 내 생활의 리듬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한 시간 전의 깨달음과 다짐도 잊고 아이스 카페라떼를 시켰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나는 유리장 안에 든 치즈케이크 한 조각과 크로와상 두 개를 추가로 시켰다. 이렇게 주문하고도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아르바이트생이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하고 물을 때까지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결국 엑셀런스 초콜릿 바를 추가했다. 주문한 게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유리장 안에 가지런히 놓인 하늘색 병의 에비앙 물병이 보였다. 낭패였다. 스타벅스에서도 물을 판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아니면 불면에 효과가 있다는 카모마일 차를 주문해도 좋았을 것을.

주문한 것을 테이블에 가득 올려놓은 채 나는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카페라떼에 꽂힌 빨대로 천천히 입을 가져갔다. 목구멍을 타고 차가운 카페라떼가 흘러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맛과 향기에 긴장이 풀렸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길을 잃는다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익숙한 길도 곧잘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길을 찾는 것은 실타래를 푸는 것과 비슷했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푸는 것은 꼬인 만큼만 실을 이동하면 되었다. 하지만 실을 푸는 데는 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돌아가는 길이 보이기 않기 때문이었다. 피로감은 체념을 불러왔고, 체념은 오히려 달콤했다.

쟁반에 올려진 것들을 천천히 즐기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 번째로 방문한 스타벅스 역시 배열만 다를 뿐 내용물은 똑같았다. 반쯤 서로에게 몸을 파묻고 있는 연인들과 혼자서 책을 읽는 사람,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는 동성 친구들까지 어느 스타벅스나 비슷한 모습이었다. 한 남자는 토요일 오후인데도 근무를 하는지 흰 와이셔츠를 입은 채 노트북으로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굳은 목을 풀려는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보다가 나는 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했다. 남자와 나 사이에는 빈 테이블이 두 개가 있었다. 나는 초콜릿 바를 입안으로 가져가며 남자를 관찰했다. 누군지 생각이 선뜻 나지는 않았지만 이목구비가 어디선가 본 듯했다. 잠시 후, 남자가 누구와 닮았는지 생각나는 순간, 나는 손에 들고 있었던 초콜릿 바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실종되었던 ‘스미스’였다.

그가 다시 노트북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외근을 나온 회사원처럼 보였다. 나는 몰래 곁눈질로 그를 관찰했다. 거리가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목구비나 앉아 있는 자세가 틀림없는 ‘스미스’였다. 물론 예전보다 사회인 특유의 힘이 들어가 보이는 모습이었다. 피부도 더 희어진 것 같았다. 의욕이 가득한, 성공이 예약된 사회초년생 같은 모습에서는, 스미스 요원을 흉내 내던 장난스러운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저 ‘스미스’는 어디에 있다가 돌아온 것일까. 어째서 그가 돌아왔는데도 나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일까. 다소 드라마틱한 상상이지만 그가 사고를 당해서 기억을 잃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얄팍한 우리 관계를 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실종되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역시 그동안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아까와는 달리 그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그를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스타벅스 안으로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스타벅스 주변에 회사가 많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스미스와 나 사이에 있는 테이블을 가득 메웠다. 더 이상 ‘스미스’는 보이지 않았다. 주말근무라도 하는 듯 모두 다 정장 차림이었다. 나는 잠시 스미스에게서 눈을 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날렵한 정장 선, 길지도 짧지도 않은 머리, 요즘 유행하는 폭 좁은 넥타이, 야외활동을 하지 않은 듯 흰 피부도 비슷했다. 공교롭게도 안경도 모두 반 무테였다. 나는 ‘스미스’와 함께 보았던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났다. 같은 모습으로 분화되어 여기저기 출몰하던 스미스 요원들. 내 앞에 앉은 회사원들이 모두 스미스 요원처럼 보였다.

옆자리에는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한 일본인 여자 두 명이 스타벅스 한 켠에 있는 일본어로 표기된 명동지도를 보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또다시 나와 저들의 처지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스타벅스에 비치된 한국어 지도를 가져다가 책상 위에 펼쳤다. 친절하게도, 명동에 있는 일곱 개의 스타벅스가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있는 지점에서 내가 처음에 갔던 스타벅스로 가는 단 하나의 선만 그으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스타벅스로 그어야 한단 말인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일곱 개의 스타벅스는 선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점으로서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길을 찾을 때는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던 ‘스미스’의 말이 생각났다. 앞에 있는 ‘스미스’에게 묻고 싶었다. 이 수많은 길 중에서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 거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도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스미스 요원 같은 회사원 무리를 지나 ‘스미스’에게로 갔다. 우선 어떻게 지냈느냐고 간단한 안부를 물으려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도 묻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물어야 했다. 예전에 길 잘 찾았잖아, 하고 웃어 보이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스미스’ 바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와 나의 시선이 얽혔다가, 이내 흩어졌다. 모르는 사람을 보았을 때의 눈빛이었다.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이 내가 만났던 ‘스미스’가 맞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서서 쭈뼛거렸다. 그리고 지도를 쥔 채로 스타벅스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아가며 표시된 스타벅스를 하나하나 가보기로 했다. 명동 거리는 약간은 낯설기도 하고, 약간은 익숙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더욱 많아져서 이리저리 치이며 길을 걸어야 했다. 처음 도착한 스타벅스는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스타벅스 앞에 분수대가 있었다. 두 번 째로 간 스타벅스도 처음 와본 곳으로, 좌석이 열 개 남짓밖에 되지 않는 작은 스타벅스였다. 다음으로 어색한 남녀가 앉아 있던 스타벅스를 다시 만났다. 옆에 있는 형제슈퍼와 옷가게 선인장을 다시 보았을 때는 뭔가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에 찾은 스타벅스가 바로 내가 처음으로 출발한 스타벅스였다.

익숙한 간판과 마크를 나는 새삼스럽게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유리창 안으로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스미스가 보였다. 그는 탁자 위에 펼쳐 놓은 책 위에 흔들림 없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등을 곧추세우고 앉은 모습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독서를 즐기기 위해 혼자 스타벅스에 온 사람 같았다. 첫 만남 때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아직까지 나를 기다려준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화장이 땀에 지워지고 지친 얼굴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익숙한 스타벅스의 공기와 향기가 느껴졌다. 소품들도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었다. 같은 모양의 텀블러, 같은 색채의 그림, 같은 내용의 메뉴. 다른 스타벅스와 다른 것이 있다면, 저곳에 스미스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갑자기 이곳을 찾아 헤맨 것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여배우가 유리잔을 들고 있는 정수기 포스터가 보였다. 스미스는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 책 속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두꺼운 것으로 보아 경제학 전공 서적일지도 몰랐다. 저런 책을 가방에 늘 갖고 다닌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나는 스미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길을 헤맸어요. 스미스는 양장본의 책을 탁, 소리가 나게 덮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스미스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이 남자 역시 흰 와이셔츠 차림에 반 무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 만난 스미스와, 그 많은 스미스 요원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스타벅스를 나왔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소설 당선소감

도망가고 싶어도 이젠 마주 서야할 시간

명동성당 맞은편에 나의 일터가 있다. 덕분에 하루에 두 번씩 명동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는다. 정오에 종이 치면 점심을 먹는다. 오후 여섯 시에 종이 치면 저녁을 먹는다. 이런 생활을 2년 동안 했더니 이제는 명동성당 종이 치면 밥 생각부터 난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네 시 반쯤이었다. 나는 건물 옥상까지 한달음에 올라갔다. 평소처럼 난간에 기대어 명동 거리를 내려보다가 난데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끝은 맺었지만 맘에 들지 않는 소설들과, 반쯤 쓰다가 밀어놓은 소설들과, 소설의 어느 한 귀퉁이로 들어가길 바라고 있는 메모들이 차례로 생각났다. 다 못 쓰고 죽으면 억울할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난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런 난감한 불안증상은 여섯 시 종이 치면서 깨졌다. 종소리를 듣자마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허기를 느꼈다. 순간,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소설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 사는 사람이었다. 조금 우스웠고, 많이 부끄러웠다.

수상 소감을 쓰는 일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어떤 문장을 써도 낯이 뜨거워졌다. 더듬더듬 내 진심을 짚어보다가 인터넷 창을 열었다. 이리저리 이미지를 타고다니며 수상 소감 쓰기를 잠시 회피하고 있었을 때, 느닷없이 인터넷 오류창이 떴다. 결국 여러 개의 인터넷 창이 한꺼번에 닫혀버리고 텅 빈 워드 프로세서 창만 덜렁 남았다. 글을 쓴다고 떠들면서도 더욱 집중하지 못했던 그간의 나에 대한 경고 같아 섬뜩했다. 도망가고 싶어도 이젠 마주 서야할 시간임이 자각되었다.

가능성을 보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이평재 작가님과, 소중한 첫 독자가 되어준 예술서가 문우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나의 결점까지 알고 사랑해주는 계란이들, 사회인으로서 성장하게 해준 YWCA 동료들, 처음 작가의 꿈을 꾸게 한 임난영 선생님, 친언니나 다름없는 동희언니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힘의 원천이 되어주신 부모님과 오빠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김지숙=1984년 인천 출생.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YWCA 홍보팀 근무 중.


소설 심사평

길 잃은 현대인의 초상 안정적인 문체로 묘사

본심 심사를 맡은 소설가 박상우(왼쪽)·김형경씨. [김성룡 기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내용이 충실하고 형식적으로 안정되어 전반적으로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외적 기법이나 내적 해법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던 판타지 요소가 크게 줄어든 현상도 예년과 달라진 점이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분명한 현실 감각 위에 발을 디디고 서 있었으며 그 점에서 두 가지 특성이 두드러졌다. 하나는 절반 정도 작품이 취업 준비생이나 청년 실업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상의 속살을 치열하게 파헤치고자 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올해 우리 사회에 유난히 많았던 상실에 자극받은 탓인지 죽음과 애도의 문제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 많았다는 점이다.

11편 중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고래가 되었다’는 서로의 그림자 역할을 떠맡은 자매의 갈등을 차분한 문체로 풀어간 작품으로, 일상을 해석하는 독특한 감각이 시선을 끌었다. 갈등의 핵심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해결책으로 제시한 고래 메타포가 불투명한 점은 아쉬웠다. ‘움직이는 페달’은 아버지의 트럭, 엄마의 피아노, 화자의 자전거 등 페달 달린 사물을 동원하여 생의 유목적 측면에 대해 천착한 점이 신선했다. 하지만 서사가 빈약하고, 형상화 측면에서 미숙함과 오류가 자주 발견되었다.

‘지나간다’는 생에서 경험한 세 가지 상실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숙련된 연마의 흔적이 인상적이었다. 주제와 부합되지 않는 서사의 개입, 이야기의 흐름을 차단하는 불필요한 세부 묘사 등은 걸림돌로 느껴졌다. ‘리얼레드’는 남성 의존적인 여성이 파괴적인 성 역할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의 와해를 인식하는 문제를 그려냈다. 전반적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나 바로 그 무리 없음 때문에 매혹이 덜했다. 폭력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의존의 굴레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결말은 의문스러웠다.

당선작으로 뽑은 ‘스미스’는 범람하는 기술복제 시대, 유혹하는 소비문화 속에서 길 잃은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길과 함께 정체성도 잃어 우리는 누구나 ‘스미스’나 ‘목장갑’과 같은 보통명사나 소비재가 되어간다. 서로를 소비재쯤으로 인식하는 이들의 관계 맺기는 일회성이고, 끝내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일상의 배면을 짚어내는 시각, 안정적이고 차분한 문체, 주제를 향해 집중하는 구성력이 돋보였고, 총체적으로 작가로서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느껴져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본심=김형경·박상우, 예심=권여선·박성원·하성란·정영훈

[창간44주년 중앙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시 부문 당선작
▶평론 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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