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의 파리산책]삶에 희망주는 빈곤층 '공짜과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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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3인 바실라는 매주 토요일 오전 한차례씩 수학 과외지도를 받는다.

과외 선생님이 파리 시내 18구에 있는 바실라의 방 두칸짜리 허름한 아파트로 찾아온다.

그 덕분에 수학과목에 차츰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성적도 나아지고 있다고 바실라는 말한다.

아프리카 이민 출신인 바실라의 아버지는 1년 가까이 실업자로 지내고 있다.

실업수당과 아내가 허드렛일을 해서 버는 푼돈이 수입의 전부. 때문에 아들 과외비 지출은 꿈도 못꾼다.

바실라의 과외 선생님은 프랑스의 과외수업 자원봉사조직 ESA (Entraide Scolaire Amicale)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다.

ESA는 바실라처럼 개인지도가 필요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과외를 못받는 학생과 자원봉사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로 생긴지 30년째인 ESA는 프랑스 전국에 1백22개 지부를 두고 있다.

지난해엔 2천2백82명의 학생들이 ESA에 등록된 1천9백4명의 자원봉사 과외교사들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자원봉사자 중 상당수가 은퇴한 노인들이지만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이다.

"해당 과목을 가르칠만한 충분한 실력과 봉사에 대한 남다른 정열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일" 이라는 게 ESA 파리지부장 즈느비에브 카리용 부인의 얘기다.

프랑스에 한국식 입시지옥은 없다.

그런만큼 사 (私) 교육이 우리처럼 보편화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여유가 있는 가정을 중심으로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과외지도로 나타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 결과 학업성적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최고 수재들이 다닌다는 국립행정학교 (ENA) 재학생 중 노동자.농부 출신 자녀는 불과 10% 미만이다.

프랑스의 자원봉사 과외는 '빈곤의 대물림' 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판인 셈이다.

배명복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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