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가을 매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7면

가을을 소리로 느끼는 게 가능하다. 대기가 건조해지면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도 여름에 비해 한결 경쾌하다. 그러나 소리로 받아들이는 가을이 여름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은 매미의 울음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짙은 녹음에서 한껏 울어대던 매미는 차가운 가을 기운에 맞춰 소리를 멎는다.

대기의 순환에 따라 울음을 그친 매미는 과거에 ‘한선(寒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매미는 이 과정에서 불명예를 뒤집어쓴다. 동한(東漢·25~220) 때의 두밀(杜密)은 강직하기로 이름이 났다. 고관대작의 자제들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퇴직한 뒤 고향에 돌아왔을 때다.

현지의 태수가 두밀처럼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귀향한 유승(劉勝)을 칭찬했다. 시비를 가리는 일에 잘 나서지 않으면서 처신을 잘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두밀의 관점은 달랐다. 국가의 녹을 받아 살았던 퇴임 고관으로서 좋은 사람을 보고서도 조정에 천거치 않고, 그른 것을 듣고서도 입을 열지 않는 것(知善不薦, 聞惡無言)은 차가워진 날의 매미와 다를 게 없다는 평이다.

여름 한 철 실컷 울어 젖힌 뒤 가을에 소리를 멈추는 매미를 비겁하면서 처신에만 민감한 사람에 비유했다. 그러나 번식을 목적으로 짝을 찾기 위해 무더운 여름날 힘겹게 울다가 그 쓰임새가 없어져 울음을 그치는 매미의 행위는 자연 그 자체다. 그를 두고 비겁함을 덧붙인다면 매미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게다.

오히려 철이 지난 줄을 모르고 계속 울어대는 매미가 있다면 이상하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자신에게 다가온 그 때의 기운을 감지 못하는 둔감함의 상징이다. 날이 차가워지는 이 가을 즈음에 맞춰 울음을 그친 매미에게서 우리는 조화와 수렴(收斂)의 덕목을 읽을 수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의 이어지는 고집이 화제다. 인사 청문회 일정까지 거부하면서 여당에 과거의 행위를 사과하라고 요구한다. 국가의 공식적인 절차인 청문회 일정이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다. 정치에서는 강직함도 필요하지만 남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철이 지나고도 계속 울어댄다면 매미는 짜증감만 더한다. 좋게 봐도 처량할 뿐이다. 뿌린 것을 거둬들여 내실을 꾀해야 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그 기운을 휘젓는다면 철을 모르고 우는 매미와 무엇이 다를까.

유광종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