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경기도 광명시 박인숙 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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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늘따라 왜 이리 잡무가 많은지. 짜증과 긴장, 그리고 색다른 설렘으로 오전을 보냈다.

뒤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 20여년 만에 중간고사를 치르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시간날 때마다 붙잡은 책. 하지만 생각처럼 머리속에 쏙쏙 입력되지 않는 내용들을 만날 때마다 당혹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학생들 중 직장인이 90%정도 되는 대학의 특성상 시험기간도 주말 오후로 정해져 있었지만, 퇴근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감만 더해가고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전화가 울린 것은 그 때였다.

지금 엄마 회사 근처에 와있다는 중학교 2학년생 큰아들의 전화였다.

웬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보니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내게 무엇인가 들어 있는 비닐봉투를 건네준다.

뭐냐고 묻기도 전에 아이가 먼저 말을 했다.

"지난번 가정실습시간에 샌드위치 만들기를 해봤는데, 엄마 시험보러 가실 때 배고플까봐 만들어왔어요. "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공연스레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고맙다고 말했다.

아들 아이는 끝까지 엄마를 감동시키기로 작정했는지 "엄마, 공부하기 힘드시죠?" 라고 한다.

"아니 하나도 힘들지 않아. 재미있는걸. 이 샌드위치 먹고나면 잊어버린 것도 다 기억나겠는데" 라고 하자 아들은 벙긋 웃는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힘에 부칠 때, 내게 그 어떤 보약보다도 기운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것은 이런 아들의 모습이다.

밤늦게 세미나를 마치고 지쳐 학교 문을 나설 때도 30분은 족히 걸렸음직한 거리를 걸어와 엄마를 기다렸다며 깜짝 쇼를 해주는 아이. 이렇게 엄마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게으름을 부릴 시간이 없다.

◇ 협찬 = (주) 한국문화진흥

경기도 광명시 박인숙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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