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평화 호소 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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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네덜란드 헤이그는 '평화의 도시' 다.

국제사법재판소를 필두로 국제법과 관련된 여러 국제기구들이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다.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1913년 헤이그에 평화궁전을 기증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평화궁전 안에 들어 있다.

헤이그가 평화의 도시가 된 것은 1899년 5월 18일~7월 29일 제1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데서 비롯한다.

군비축소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소집된 이 회의엔 26개국이 참가했다.

주목적인 군비축소엔 실패했지만 교전상태의 조건과 육전 및 해전에 관한 관례 등을 결정했다.

가장 큰 성과는 국제분쟁을 중재하는 상설재판소가 설치된 것이다.

제2차 만국평화회의는 1907년 6월 15일~10월 18일 열렸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국대통령의 제안으로 소집된 이 회의엔 44개국이 참가했다.

군비축소안은 또다시 부결됐다.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거둔 성과는 8년 후 다시 회의를 소집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이로부터 국제문제를 처리하는 최상의 방법은 일련의 연속적인 회의를 통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구체화했다.

제2차 만국평화회의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고종의 밀명을 받은 이준 (李儁).이상설 (李相卨).이위종 (李瑋鐘) 3인은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 한국 침략을 규탄하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본회의에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이준은 병을 얻어 현지에서 사망했다.

제3차 만국평화회의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1915년 열려야 했다.

그러나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좌절됐으며, 그후 다시 열리지 못했다.

지금 헤이그에선 역사적인 회의가 진행 중이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1백년을 기념해 11~15일 '1999년 헤이그 평화호소회의' 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40여개 국제민간단체, 그리고 60여개국을 대표한 5천여명이 참석하고 있다.

이들은 분쟁해결 수단으로서 전쟁의 비합법화와 21세기 평화문화 정착 방안을 놓고 토의하고 있다.

회의결과는 48개 조항으로 된 '평화와 정의의 의제 (議題)' 와 9개 캠페인 목표로 정리될 예정이다.

20세기는 전쟁의 세기다.

다음 세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발칸반도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선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없는 세상, 세계평화를 호소하는 헤이그로부터의 목소리는 포성 (砲聲)에 묻혀 들리지조차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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