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왕따 기업 "날좀 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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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가가 높은 기업들은 요즘 증시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유상증자 발행가를 현재 시가보다 적당히 낮추어 공모를 하면 주주들이 벌떼같이 덤벼들어 무이자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증자 후에도 권리락 시세를 곧바로 되찾아 주가관리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가가 낮은 기업들은 사정이 다르다. 발행가격을 현재 시세와 비슷하게 정하면 주주들이 등을 돌릴테고, 그렇다고 액면가 밑으로 증자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13일 현재 5백90개 상장사들 (관리종목 제외)가운데 주가가 1만원 아래인 종목은 1백61개. 이들 종목 중 상당수는 20~30%에 이르는 유상증자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예상 발행가격이 액면가 밑으로 떨어져 증자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

이러다 보니 지난해 말 이후의 상승국면에서도 투자자들로부터 소박을 맞아 주가가 형편없는 이른바 '왕따기업' 들의 경영진과 재무담당 직원들은 요즘 증자를 성공시킬 묘안짜기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 무상증자 병행하기 = 가장 고전적인 방법. 올들어 유상증자계획을 발표한 97개 기업 가운데 20개사가 무상증자를 병행했다. 쌍용양회는 지난 3월 할인율 25%로 주당 64%의 유상증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주당 50%의 무상증자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또 다우기술.대경기계.대덕산업.세림제지.유성금속 등도 유상증자와 동시에 20% 이상의 무상증자를 병행했다.

◇ 신주인수권부사채 (BW) 끼워 팔기 = 올들어 BW가 고수익상품으로 투자자들의 인기를 끌자 주가가 낮은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유상증자 참여자들에게 증자비율만큼의 BW를 주고 있다.

지난달 9일 광주은행은 주당 43%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증자참여자들에게 유상증자비율과 같은 비율의 BW를 제공했다. 당시 주가를 감안할 때 할인율 20~30%를 적용하면 발행가격이 액면가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

BW의 액면가격은 1만원이며 발행가격은 단돈 10원. 이자율은 연리 15%를 보장하고 발행 후 5년 후부터는 주가가 5천원에 이를 경우 BW를 보통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 중앙.동양.금호종금과 부산.경남.전북은행 등 금융기관들과 금강화섬이 이런 방법으로 유상증자를 시도했다.

◇ 적극적인 주가관리 = 유상증자를 앞두고 대대적인 투자자홍보 (IR) 를 실시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지난달 10일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 계열사 9개는 제일기획에 IR를 대행시켜 대규모 투자자설명회를 가졌다.

대우그룹은 올해 계열사의 주가수준을 최고경영자의 인사평가에 반영키로 했다. 이와 별도로 대규모 증자를 앞둔 대우중공업은 회사차원의 주가관리를 선언했다.

유상증자를 이미 공시한 기업들은 청약일 직전까지 주가를 관리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하나은행은 청약 전날 주가가 공시일에 비해 무려 82%나 올랐고, 외환은행.LG건설 등도 50% 이상씩 값이 올랐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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