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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역갈등 법으로 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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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2건국위가 어제 부산에서 개최한 '국민화합을 위한 범국민토론회' 에서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시됐다.

제2건국위는 이달 중 광주와 서울에서도 같은 토론회를 여는 등 지역감정 해소를 중요 목표로 삼고 있다.

어제 제시된 아이디어들은 영.호남간 교류 활성화 방안을 비롯, '지역감정조장 감시센터' 설치, '지역차별금지법' 제정, '지역감정측정지수' 개발 등 주로 호남.영남간의 갈등해소를 겨냥한 것들이 많았다.

토론회에 영.호남 인사가 고루 안배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망국병 (亡國病) 으로 일컬어지는 지역감정의 폐해를 상기하면 주최측의 근본 취지 자체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토론회는 그러나 단순한 아이디어 수집차원에서 열린 행사가 아닌 데다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제2건국위가 갖는 무게까지 생각할 때 짚고 넘어갈 점들이 있을 것 같다.

우선 지역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일의 실효성 문제다.

지역감정은 상당 부분이 당대 집권층에 책임이 있는 인사.예산상 불균형이나 특정 지역간의 막연한 편견과 역 (逆) 편견 등 법률 이전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물론 인사.예산.지역개발 등의 균형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런 법의 구상이 나왔겠지만 선언적 의미 외에 무슨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감시센터 발상도 오해를 낳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권에서는 야당의 장외집회 발언을 문제삼아 한때 지역감정 조장 언동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는데 이런 기구가 야당활동을 규제하려 한다는 비난이 나올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또 흔히 편중인사가 지역감정을 악화시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부의 편중인사를 금지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도 의심스럽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는 집권층이 솔선수범하고 인사.예산상 지역균형 정책을 펴면서 자연스러운 국민의 의식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된다.

제2건국위가 제안한 지역감정측정지수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발상이다.

무엇보다 지역감정 감시센터 설치, 지역감정자제 공동선언문 채택, 지역감정선동 정치인 표 안주기 운동 등을 '2000년 4월 총선에 대비하여' 펼치자고 제안한 것도 제2건국위가 여권 외곽단체라는 오해를 사기 알맞은 처사다.

지역감정을 소박한 향토애로 순화.정착시키는 일은 법률만능.정치지향 사고로는 역부족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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