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코미디 연장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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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은 고승덕 (高承德) 변호사의 서울송파갑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 포기를 "여권의 회유와 압력에 굴복한 것" 이라고 규정, 임시국회 보이콧 등 강경투쟁방침을 세워 高씨사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여야간에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연일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 2백여회 출연경력의 高씨가 국민회의 공천을 노리다가 돌연 야당으로 가서 공천을 받은 직후 장인이 총재로 있는 자민련 당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포기했던 그 자체가 한편의 코미디였다.

한나라당은 외압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高씨가 여권의 회유와 거부하기 어려운 압력을 실제로 받고 자기 의사에 반해 출마를 포기했다는 증거는 현재로선 드러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출세지향의 젊은 정치지망생 그 자신의 코미디적인 행위로 귀착되고 있다.

그런 판에 한나라당이 이를 이유로 임시국회를 보이콧한다면 이야말로 명분없는 또다른 코미디의 연장일 따름이다.

야당은 그의 출마포기에 여권의 강압의혹을 확신한다면 오히려 국회에서 이를 집요하게 추궁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더 나은 투쟁방법이 될 것이다.

여권도 高씨문제를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의 집안문제라는 이유로 야당의 반발을 맞받아 치고 나서 저질 정치코미디의 확대를 거들고 있다.

혈연간에도 정치소신과 철학에 따라 얼마든지 정파를 달리할 수 있고, 지난 몇차례 선거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여권은 따라서 高씨 해프닝의 빠른 종식을 위해서도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을 해명해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 이상 이런 유치한 코미디가 이어져서도 안되겠고, 무엇보다 이런 문제로 국회가 또 공전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高씨 코미디 발생의 본질은 우리 정당의 공천제도가 너무 컴컴하다는 데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과정이 밀실에서 수뇌부 몇몇의 의사에 좌지우지되다 보니 후보자질과 인물됨됨이, 후보의 성향과 당노선의 합치성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이 배제된 채 공천이 이루어진다.

오직 득표력이나 수뇌부의 연줄 위주로 밀실공천이 이루어지니 공천 직후부터 잡음과 말썽이 따르고 당선 후엔 또 이당 저당 옮기는 사태까지 나서 정계를 혼탁시킨 것이 최근까지의 우리 정당사였다.

여야는 더 이상 티격태격을 계속할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상향식 공천제도의 도입을 포함한 공천제도의 투명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 또다시 이런 코미디가 재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번 파문을 보상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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