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군대보낸 부모의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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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일 0시30분쯤 50대 남자가 본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서울에서 개인택시 운전을 한다는 그는 대뜸 "왜 돈을 주고 아들의 병역을 뺀 사람들의 명단을 모두 공개하지 않느냐. 고위층은 한명도 없느냐" 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인을 제외한 사람의 이름을 판결이 나기 전에 보도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걸릴 가능성이 있고 고위층 자녀에 대해선 수사당국이 적발하지 못했다" 고 답하자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할 것이 있다" 며 말을 이어갔다. 남매를 둔 그는 지난해 8월 외아들을 군대에 보냈다.

아들이 허약한데다 결핵에 걸린 적도 있어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위해 밝은 표정으로 보냈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전 부산에서 근무 중인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훈련받다가 이가 4개 부러져 일반치과에서 6만원을 주고 땜질처리만 했다" 며 "다음주 중 면회를 와달라" 고 부탁했다.

그는 혹시 아들이 구타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지만 그래도 아들에게는 "군대에서 훈련받다가 다칠 수도 있다" 는 식으로 다독거렸다.

그러고 난 직후 '사상최대 병역 면제 비리' 사건이 터지자 그는 속이 뒤집히고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가 부러져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을 아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지도층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아예 몰랐으면 울화통이나 터지지 않았을테고, 아니면 언론이 속 시원히 모두 밝히면 (병무비리자들을) 사회에서 추방이나 할 것 아닙니까. " 그는 "순진하게 군 입대한 사람만 바보가 되는 세상" 이라고 말했다.

그는 "택시운전사인 내가 운전을 잘못해도 여러 사람이 다치는데 하물며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잘못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입고 우리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는 줄 알아요" 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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