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판, 징하요(3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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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34) '길소뜸'과 김지미

85년 만든 '길소뜸' 은 영화 '비구니' 의 좌절을 극복해준 작품이다.

약간의 실망감으로 울적한 나날을 보내던 터에 '길소뜸' 이 내게 힘을 실어 주었다.

'길소뜸' 은 이산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서로 평생을 찾아 헤매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2년전 KBS가 대대적으로 펼친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 계기가 됐다.

내 주변에 이산가족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6.25의 비극을 체험한 나로서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TV를 볼때마다 한결같이 기막힌 사연이 나오고 극적인 상봉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10년후가 될지라도 이 소재를 꼭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화천공사로부터 우선 필름 2천자를 얻어 여의도 '만남의 광장' 으로 달려가 이 광경을 계속 카메라에 담았다.

그로부터 2년후. 영화진흥공사에서 시나리오 소재공모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원고를 읽다가 '길소뜸' 을 발견했다.

내용중 멜로드라마같은 부분은 도무지 싫었지만, 평생을 찾아 헤매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나 이 소재를 내 속에서 곰삭이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새로운 사례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튼 영화는 전쟁을 겪은 여자의 과거 회상형식으로 꾸며졌다.

신성일과 김지미 두 베테랑연기자가 기구한 운명의 인물로 출연했다.

회상장면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재는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도록 애썼다.

무게의 중심은 아무래도 김지미씨로 집중됐다.

'길소뜸' 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이산가족 찾기가 한창인 83년 여름. 화영은 남편의 권유로 아들을 찾아 나선다.

이곳에서 화영은 우연히 동진을 만난다.

동진은 해방통에 옛날 얹혀살던 아버지 친구 김병도의 아들. 그때 화영은 동진과 사랑에 빠져 아들 석철을 낳는다.

그리고 이별. 결국 33년의 세월을 극복하고 석철을 만나지만 법의학을 통해서도 석철이 자신의 아들임을 확증받지 못한다.

화영은 석철이 자신의 아들임을 눈물로 확신한다.

이 영화에서 김지미씨는 거의 맨얼굴로 연기했다.

될 수 있으면 예쁘게 보이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여배우 입장에서도 대단한 결단이었다.

더구나 회상장면은 롱쇼트인데 반해 현재 시제는 클로즈업이나 바스트쇼트를 중심으로 구성돼 그 효과는 더욱 컸다.

늘 아름답고 싶어하는 여배우의 욕망을 오직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억제한 것이다.

이때문에 '길소뜸' 이 좋은 평가를 받기까지는 김지미씨의 공로가 컸다.

스타이기보다 진정 예술가가 되기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길소뜸' 은 대종상 작품상을 비롯, 시카고영화제에서 세계평화메달상을, 베를린영화제에는 본선 진출의 결실을 얻었다.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현지의 한 신문의 평은 이랬다.

"어린 시절의 두사람의 추억과 사랑의 장면은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자식을 만나고 속되고 가난한 그가 생활에 몸부림치는 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카메라는 차디차다. '자식이 이렇게 된 것도 전쟁때문인가요. 자식이라고 불러줘요' 라고 소리쳐 호소하는 데도 귀를 막는 이 영화의 냉정함은 눈을 휘둥그레 하게까지 만든다. "

영화가 끝나는 부분에서 주인공은 다시 냉험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그렇게 '되어있는' 땅이다.

하지만 거기에 '숨통' 이 있었다.

배운 자와 못배운 자,가진 자와 못가진 자, 여러 형태의 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걸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억지가 되더라도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 이질화의 간극을 조금씩이라도 메꾸어 나가면서 융합하는 쪽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 '길소뜸' 에서 내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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