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아직 멀었다] 공무원은 여전히 '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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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간 부문을 대표해 규제개혁위원회에 참여한 기업인과 교수들 (12명) 은 규제개혁이 시작된 후 정부부처와 공무원들의 자세가 "상당히 바뀌었지만 아직 미진하다" 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공익' 을 내세우며 민간 부문 전반에 간여하려는 관 (官) 우월주의와 부처이기주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사례 하나. 재경부는 지난해말 규제개혁위에 생활협동조합법안의 규제영향평가 심의를 의뢰했다.

법안의 취지는 좋았다.

협동조합 운영자가 개인자격으로 물건을 사들이기 때문에 겪는 각종 제도적 불편을 해소하고 소비자와의 분쟁해결도 돕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용이었다.

농.수.축협 관련법에 버금가는 50여개 조항에다 중앙회 구성에서 임원임면.정관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규제가 들어 있었다.

위원회는 "취지를 살리는 선에서 규제를 최소화하라" 며 두번이나 법안을 반려, 20여 조항으로 줄이도록 한 뒤 통과시켰다.

위원회가 산업안전.사전검사 등 '밥그릇다툼' 이 치열한 문제를 다룰 때 관련부처들은 '인해전술' 을 쓰곤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원은 "국민생활에 밀접한 안건에는 사무관급 실무자만 출석하다가 관할권이 걸린 안건이 제기되면 담당 실.국장뿐 아니라 산하단체.협회.전문가들이 회의장에 총동원된다" 고 말했다.

'긴급심의제도' 의 남용도 문제다.

이는 시급한 사안에 한해 신설규제의 영향평가를 면제해주는 제도이나 부처들은 오래 전에 폐지가 예고된 기존 규제의 대체법규도 시한 2~3일 전에야 위원회에 들이밀며 긴급심의와 당일 통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긴급건수가 분과위별 취급안건의 30~50%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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