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봉급자가 '봉'이되는 국민연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둘러 땜질한 국민연금의 확대가 우려했던 대로 초장부터 부실덩어리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도시자영자와 4인이하 사업장 근로자의 가입신고현황을 보면 우선 '전국민연금' 이라는 정책구호부터가 무색하다.

4백2만명이 새로 납부대상에 포함됨으로써 국민연금보험료 납부자는 1천만명을 넘어섰지만 납부예외자가 54.5%로 절반을 넘는다.

실직과 휴.폐업, 미취업 등이 이유라 하지만 직장가입자 이상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추정되는 자영자 51만2천명이 소득이 없어 보험료를 낼 수 없다고 신고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당국의 준비소홀과 홍보부족으로 연금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계층이 연금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모순을 드러냈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신규가입자의 신고소득 내용이다.

특히 도시자영자들은 전업종에 걸쳐 '하향신고' 가 두드러졌다.

도시자영자의 평균신고소득이 기존 직장과 농어촌가입자의 평균소득보다 43만원이 낮다면 누가 이를 믿을 것인가.

의사.한의사.변호사.회계사 등 대표적 고소득 전문직종 가입자들은 대부분 과세소득과 같거나 그보다 낮게 신고했으며 월평균소득이 99만원 이하로 신고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이같은 신규가입자의 소득하향신고는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기존 가입자들은 연금급여가 내년부터 최고 13%가 줄어든다고 한다.

'유리지갑' 처럼 소득이 훤히 드러나는 봉급생활자들이 하향신고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맡는 격이다.

근로소득세 납부에서도 원천징수로 '봉' 노릇을 하고 있는 봉급생활자들이 또다시 국민연금 확대시행의 최대 피해자가 된다면 이들의 불만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소득의 하향신고는 직장가입자와의 형평성문제 말고도 연금재정의 불안과 그에 따른 지급액 감소, 나아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적게 버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사회보험의 정신에도 배치돼 국민연금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반쪽 연금' 으로 출발부터가 잘못됐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확대실시를 보류할 수는 없다.

신속하고 꾸준한 보완을 통해 형평성 시비를 줄이고 연금제도의 조기정착을 기함이 현실적이다.

납부예외자가 소득활동을 개시하면 즉각 신고토록 해 납부예외자를 줄이고,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를 하루속히 가동시켜 이들의 실제소득을 정밀파악해 중점관리하는 등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납입보험료 계산방식을 아예 달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특히 도시자영자들에 대한 소득파악은 비단 연금관리뿐만이 아니라 조세정의의 실현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갖고 이들의 소득파악을 조세체계 개편으로 연결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