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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7일 구로구 일대서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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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3분 남짓 초단편영화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수감자의 두 얼굴을 풍자한 허영훈의 애니메이션 ‘야누스’의 한 장면.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 제공]


TV를 켜려고 하는데 리모컨이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을 헤집고 소파도 뒤집어본다. 이런 사소한 일상도 영화가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막상 만들어 보니 근사한 작품이 됐다. 독일영화 ‘더 라스트 플레이스 유 룩(The Last Place You Look)’이다. 전체 1분이 조금 넘는다.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리모컨을 찾겠다고 서랍·소파를 뒤지다가 소파 속으로 거꾸로 처박힌 주인공. 푸른 하늘 아래로 온갖 물건이 쏟아져 나온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 화풍을 구경하는 듯하다. 밀로의 비너스상, 뭉크의 ‘절규’ 같은 예술품이 나오더니, 전설상의 대륙 아틀란티스 지도도 떠다닌다. 그런데 이 주인공. 값진 ‘보물’이 다 싫단다. 그가 회심의 미소로 집어 든 건 TV리모컨. 브라운관에는 야구 생중계 안내자막이 뜬다. 스포츠 중독에 빠진 현대인을 꼬집고 있다.

흥미있는 게 또 하나 있다. 이 작품은 독일 베를린 지하철 안에서 상영됐다. 지하철 안은 소란스럽기 때문에 영화에는 사운드가 없다. 베를린국제지하철영화제는 올해(9~15일)로 8회째. 초단편영화 수백 편이 베를린 지하철 4000여 개의 모니터에 흐른다. 1주일간 1백60만 명의 지하철 승객이 영화를 즐긴다. 승객들은 우수작을 선정하는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영화제가 처음 개최된다. 23~27일 서울 구로구 일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다. 초단편영화는 주로 3분 내외의 짧은 영화를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11년째 초단편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명지대 교수)씨는 “20세기형 영화가 극장과 상영시간이란 제한에 묶여있다”면 “디지털 미디어의 약진에 힘은 초단편영화는 그런 제약에서 자유롭다”고 말했다.

초단편영화는 사회의 구석구석을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을 추구한다. 김영진씨는 “관객의 감성에 압침을 놓는 영화”라고 규정했다. 예컨대 이번에 출품된 ‘더 잡(The Job)’은 장기불황 시대의 화이트 클라스를 비튼다. 번듯한 건물 앞에 성장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회계사와 컨설턴트들, 그들은 픽업트럭을 몰고 온 청바지 차림 블루칼라의 구인 호출에 서로서로 경쟁하듯 트럭에 오른다. 사무직 근로자의 일용시장을 극화했다.

‘몸집’이 가벼운 초단편영화는 장비의 제한이 없다. 비디오 캠코더는 물론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을 수 있다. 실력을 검증 받은 기성감독은 물론 일반인도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출품자의 80% 이상이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한 20~30대 ‘예비 감독군’이다. 영화제작의 일반화·대중화가 자리잡았다는 증거다.

상영방식도 독특하다. 극장(CGV프라임 신도림)과 거리 상영이 동시에 진행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모니터로도, 구로구 일대 주요 건물에 설치된 LED 화면으로도 볼 수 있다. 선거 유세 때 흔히 보는 이동식 영상차량도 거리를 달린다. 온라인 상영은 기본이다. 이번 행사의 서명수 집행위원장은 “일상과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도시문화 축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23~27일 서울 구로구 전 지역. 국내외 초청작·경쟁작 317편 상영. 구체적 상영 일정, 부대행사는 영화제 홈페이지(http://www.sesiff.org) 참조. 02-6300-6850.

  박정호 기자



초단편영화 포인트는 … 짧게, 굵게, 쉽게

‘7급 공무원’ ‘검은 집’의 신태라 감독도 이번에 3분짜리 영화를 처음 만들어봤다.

남한군과 북한군을 소재한 ‘27일 후’다. 그는 “장편영화를 찍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짧은 시간 안에 시각적 요소와 얘깃거리를 동시에 담기가 힘들었다는 것. “마치 시를 쓰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다음은 그가 제시하는 초단편영화 만들기의 5가지 핵심 포인트.

①거창한 얘기는 삼가라=3분으로는 긴 호흡을 유지하기 어렵다. 짧고 굵은 소재를 잡는다. 작은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촬영에 대한 공포감부터 먼저 없앤다.

②설계도를 잘 짜야 한다=시간은 짧지만 보여줄 건 다 보여줘야 한다. 이번에 찍고 보니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간 부분이 많다.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잘 계산한다.

③장비에 구애 받지 마라=처음에는 휴대전화로 찍으려고 했다. 성의가 없어 보일까 봐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했다. “저 정도면 나도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④난해한 영상은 피한다=지나친 실험성은 관객과의 소통에 장애가 된다.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는 만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도록 꾸민다.

⑤임팩트(Impact)를 실어라=지하철, 길거리에서 관객을 잡아두려면 강한 충격이 있어야 한다. “저게 뭐지” 하는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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