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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한다며 돈 당겨 쓰고 재해복구 예산 쓰지도 못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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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재해 복구에 급하다고 추가로 짜놓은 예산은 제대로 쓰지 않고, 법적 근거도 없는데 예비비를 쓰고…'.

17일 국회 예산정책처(처장 최광)가 지난해 정부의 세입세출 결산을 분석한 결과 정부의 지난해 예산 운용에 적잖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초대형 태풍 '매미'로 큰 피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피해 복구를 서둘러야 한다며 재해대책예비비를 3조원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2차 추가경정 예산안을 짰다. 재원은 국채로 빚을 내 마련했다. 당시 정부가 계산한 피해 복구비 소요액은 3조7356억원이었으나 연말까지 실제 집행된 금액은 5985억원(16%)에 불과했다. 국회는 당시 사안의 긴급성을 감안해 추경예산을 일괄 통과시켰으나 집행은 제대로 안 된 셈이다.

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복구비 집행률이 낮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명백한 것은 추경으로 편성된 3조원이 2003년 말까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이는 결과적으로 태풍 매미로 인한 재해대책복구비 부족분을 반드시 추경으로 편성할 필요가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경기 진작을 위해 4조4775억원 규모의 1차 추경을 편성했다. 재원은 세계잉여금(1조4168억원).한은잉여금(9007억원).세수경정(1조3317억원) 등으로 조달했다. 2004년이나 그 이후에 사용할 재원을 앞당겨 썼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정부가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집행하고, 하반기에 경기 진작을 위해 다음에 쓸 재원을 당겨 추경을 편성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미래에 쓸 재원을 끌어다 쓰는 것은 국민 부담을 계속 미루는 셈이어서 결국 언젠가는 국민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군사정보비 명목으로 656억원을 지출했다. 특수임무수행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는 근거법은 올해 1월 29일 제정돼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뒤 효력이 발생하게 돼 있다. 법적 근거도 없이 예비비에서 돈을 갖다 쓴 것이다. 예산정책처는 이를 국회가 사용 내역을 사전에 심의하지 않는 예비비를 편법으로 운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정부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일반 경비에 연례적으로 예비비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지적됐다. 예측할 수 없는 지출에 쓰기 위해 마련해 두는 예비비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산정책처는 연례적인 예비비 지출로 ▶외교통상부의 일반 외교 활동비 119억원▶통일부의 북한 이탈 주민 정착지원금 105억원▶보건복지부의 생계급여비 307억원 등을 들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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