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여왕] 특별기고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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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한세기 우정의 꽃 더 활짝 피게 해 주세요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님 먼 길 잘 오셨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극서 (極西) 의 영국에서 극동의 우리나라에 오신 여왕님을 성심으로 환영하며, 이 땅의 온갖 꽃과 잎새까지도 때맞춰 전에 없이 눈부시게 피어 환영합니다.

동방예의지국으로 긍지높은 우리나라에는 국빈을 맞이하는 오랜 문화전통이 있습니다만 5천년 역사상 그 어느 국빈보다도 존귀하신 손님으로서, 우리 국민 모두는 최선의 성심과 애정으로 여왕님을 맞이합니다.

여왕님의 오심으로 한국과 영국의 1백여년 우의는 더욱 돈독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느끼며 기쁨과 영광으로 설레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국민이 키워온 여왕님에 대한 존경은 모든 차이를 초월해 오직 순수하고 지고 (至高)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영국민 못지 않게 여왕님을 아름다움과 화평과 낭만적 꿈의 발현으로 어릴 적부터 사랑하며 동경해 왔으니까요. 우리 역사에도 세 분의 여왕님이 계셨는데, 1천년 역사 신라적의 선덕여왕님께서 특히 그러하셨습니다.

공주마마 적부터 자혜와 영명함이 뛰어나시어, 재위시 평화롭고 풍요롭고 강력한 국력과 독특하게 아름다운 불교적 신라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우셨는데, 그 유적지 경주를 못보심이 아쉽습니다.

여왕님께서 인간의 존엄한 품위와 예절을 숭상해온 선비정신의 고장 안동을 방문지로 선택하심은 우리 국민과 더불어 안동이 고향인 제게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 자랑이 됩니다.

서울의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와 미동초등학교 등 한국적인 것과 어린이에 대한 여왕님의 관심에서 더욱 향기높은 격조와 친근함을 느끼게 됩니다.

유학적 충효의 전통고장 안동문화는 역사적 재난으로 외형에선 많이 소실 변모됐으나 내면에는 아직도 옷품 넉넉한 도포 입고 팔모정자관 높이 쓴 학선 (鶴仙) 같은 선비들의 청아한 정신과, 강인한 절제와 엄격한 법도 안에 드맑게 꽃핀 한국여성의 긍지가 도도히 흐르고 있어 부디 이런 내면을 살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통적 충효정신은 엄격한 절도와 관대함에서 영국의 신사도와 흡사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인류의 평화공존이라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 영국군이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6.25전쟁 적의 우정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적 내외법 (內外法) 이 특히 엄격했던 안동이 여왕님의 방문을 다시 없는 역사적 광영으로 준비해 왔으니 부디 좋은 여행되십시오. 또한 우리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봄철에, 동방에서 가장 편안한 곳 안동에서 73회 탄신일 맞으심을 경하드립니다.

두 나라의 우정과 이 시대 이 세계를 아름답게 하소서.

유안진 시인.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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