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맞은 교직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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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교단이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교직에서 마음 떠난 교사들이 크게 늘었고 교육공동체인 교사.학부모.학생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21세기 교육을 짊어질 우리 교단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비현실적 개혁에 줄잇는 명퇴…고개숙인 선생님

최근 명예퇴직 신청을 낸 서울 H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50대 초반의 여교사는 아직도 며칠 전의 일에 가슴이 쓰리고 교직에 회의를 느낀다.

쉬는 시간 "우리 선생님은 50세가 넘지 않았느냐. 이번에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는 아이들의 수군거림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전체 34학급 담임교사중 3명이 올 8월말 당연퇴직, 12명이 명퇴 신청을 한 서울 K초등학교의 40대 후반 여교사는 "50대 교원들은 서로 '명퇴신청을 내지 않았느냐' 는 자조섞인 인사말을 건네고, 명퇴신청하지 않은 50대 교원을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상황" 이라고 말했다.

50대 교원들의 상실감은 올해초 교원 정년단축 발표 이후 더욱 깊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만 해도 부장교사.교감.교장으로 한창 일할 나이였으나 갑자기 '나이 많은 무능력자' 로 낙인찍힌 것이다.

실제로 올들어 서울 E중학 등 상당수 학교가 교무부장 등 보직교사 연령을 지난해 40대 후반~5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40대 초반으로 낮췄다.

세대교체인 셈이나 그렇다고 30~40대 교사들의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30대 후반의 서울 D여중 金모 교사는 "교사들이 촌지.체벌.무능력자로 매도되는 것 같아 정말 교직에 회의를 느낀다" 며 "교직경력 20년이 지나 연금만 받을 수 있으면 그만두겠다는 젊은 교사들이 많아졌다" 고 털어놓았다.

교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뒷북만 치는 비효율적인 교육개혁정책과 현실적으로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환경 사이에서 불거지는 답답함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교원정년단축 준비작업을 해왔지만 아직도 체계적인 후속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성과급제 도입' 등 무책임하게 정책방향만 제시, 교직사회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 있거나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상당수 서울 시내 초등학교에서 교원이 부족, 보통 주당 12시간 수업을 해온 부장교사.연구주임들이 올해는 21시간을 하고 있다" 고 밝혔다.

특히 최근 접수 결과 전국적으로 명퇴 신청 교사가 1만2천여명에 이르러 올 2학기에는 심각한 교사 수급난이 벌어질 전망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명퇴 신청자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기간제교사 등을 활용하면 문제가 없다" 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마음 떠난 교사들이 얼마나 성의껏 교육에 힘쓸지 의문이다.

오대영 기자

◇ 전교조 가입놓고 분쟁… 갈등의 교단

서울시내 사립 중.고교에서는 요즘 한쪽에선 학교 게시판에 붙은 벽보를 떼고, 한쪽은 다시 붙이는 신경전이 한창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13일부터 위원장.지부장.대의원 등의 투표를 실시하고 있는데 조합원 교사들이 위원장 선거공보와 전교조 가입을 권유하는 벽보를 학교 게시판에 붙인 것이 발단이 됐다.

서울 C중학교는 사무직원을 시켜 벽보를 떼내다 자꾸 나붙자 "오는 7월 합법화되는 전교조가 벌써부터 활동을 시작해도 되느냐" 며 교육부에 질의했다.

지난주말 부산 M고의 경우 전교조 분회결성 추진위원회 관계 교사가 학교측의 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직위해제당하자 가입교사들이 철야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교단에 뜻을 잃은 교사들이 무더기로 떠나가고, 남은 한쪽에서는 학교.교사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현상이 학교현장에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긴장구조는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도, 심지어 교사와 교사 사이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게 일선 교육현장의 목소리다.

서울 K초등학교 李모 (50) 교사는 지난달 5학년 학생에게 수업시간 중 뛰어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주다 "선생님 퇴출당하고 싶으세요. 정말 배짱 좋네요" 라는 말을 듣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이달초 명퇴신청을 냈다.

초등학교 3학년 동급 여학생을 자주 괴롭히는 남학생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자 대뜸 "원하는 게 돈이세요? 내 아이도 매일 맞고 돌아와요" 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펑펑 흘린 S초등학교 여교사의 얘기는 서울 초등학교 교사들 사회에서 널리 회자되는 일화다.

학부모들도 교사들에게 마찬가지 불신을 갖고 있다.

서울 D초등학교의 한 학부모는 "1학년 담임 여교사가 툭하면 전화를 걸어 아이가 문제 있다고 말하는데 촌지를 달라는 걸로 밖에는 볼 수 없다" 고 불만을 호소했다.

서울교대 안천 교수는 "교사들에게는 자긍심을 갖게 해주고 학교.학부모간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또다른 교육개혁이 급선무" 라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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