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끼리 도란도란] 예쁜 접시에 담아 여왕처럼 먹자, 나는 소중하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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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지진희가 연기했던 주인공 ‘조재희’. 그는 (표면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는 건조한 인물이다. 성격도 비딱하고 어쩌다 하는 말도 품새라고는 없어서 상대의 부아를 돋우기 일쑤다.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의 인물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의외로 이 캐릭터가 보여준 삶의 태도 중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식사시간에 임하는 완벽한 자세’를 꼽을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조재희라는 인물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 하나 있다. 대기자가 득실거리는 고깃집에서 홀로 테이블을 독차지하고 자신만의 요리 노하우를 읊어가며 천천히 완벽하게 고기구이를 음미하는 ‘싸가조(싸가지 없는 조재희라는 의미의 줄임말 은어)’ 장면. 기다리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주인 입장에서는 테이블 회전율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못마땅한 게 맞다. 그 눈총을 받기 싫어 내 돈 내고 먹는 밥도 헐레벌떡 끝내고 나온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조재희라는 캐릭터가 부럽고 따라 할 만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어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상황을 최선을 다해 당당하게 즐기는 사람’이라는 점.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중 ‘셀프 리추얼(Self-ritual)족’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의식을 치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혼자 식사를 하더라도 식당에서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기는 이미 언급된 싱글 수칙이다. 셀프 리추얼족은 여기서 더 나아가 혼자 먹더라도 ‘스스로 나를 대접할 것’을 주장한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어느 광고 카피처럼 다른 누구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제례의식을 치를 때처럼 품격과 예의, 성실함을 다하자는 의미다.

그러니까 식사를 주제로 말하자면 무엇을 먹는가 보다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혼자 먹으니까 대충 김밥이나 분식으로 때우지 말고, 혼자라서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맛을 충분히 즐기고, 혼자니까 싱크대에 기대 찬밥 물에 말아 먹는 일 같은 건 말자는 거다. 혼자 먹더라도 반찬을 정성껏 만들고 예쁜 접시에 담아 정찬을 먹을 때처럼 식사 시간의 행복을 즐기자는 말이다.

셀프 리추얼족이 시사하는 ‘의식’이 꼭 ‘싱글 수칙’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진가를 느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방법과 수순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소중하다는 마인드다. 예를 들어, 맥주를 마실 때도 그렇다. 과학적으로 표면 재질의 작용 때문에 맥주를 맛있게 먹으려면 종이컵보다는 유리잔을 사용해야 한다. 이왕이면 브랜드가 특정하게 제작한 유리잔이 더 좋다. 꼭 한 잔이 채워져서 기분을 좋게 하니까. 탄산음료를 마실 때는 와인잔처럼 위로 갈수록 잔 입구가 넓어지는 모양이 좋다고 한다. 고유의 향과 코끝으로 터지는 탄산 효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상은 바쁘고, 경제는 어둡고. 이제 서서히 일조량이 줄면서 날씨까지 추워지면 심리적으로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만나게 되는 내 모습이 초라하면 그 상실감은 더욱 커진다. 소중한 나를 더욱 귀히 여겨서 의식 갖춰 섬길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다.

서정민 기자, 일러스트 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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