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종업원들 '쿠데타'…사장제치고 법정관리 관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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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도쿄 = 남윤호 특파원] 일본에서 종업원들이 오너에 반기를 들고 회사를 법정관리에 집어넣은 일이 발생했다. 오너에게 경영을 믿고 맡기기 어렵다는게 이유다. 기업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종업원들의 '쿠데타' 가 일어난 곳은 도쿄 (東京) 증권거래소 2부에 상장돼있는 자동차부품회사 닛코덴키 (日興電機) .이곳의 종업원 3백26명은 도쿄지방법원에 회사갱생법의 적용을 신청했고, 이것이 지난 10일 받아들여졌다.

종업원이 직접 회사갱생을 신청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법원은 12일 재산관리인을 선임했고 지분율 14.8%의 최대주주인 고토 쓰네모토 (後藤常元) 사장은 경영권을 잃었다.

회사갱생이란 한국의 법정관리와 비슷한 것으로, 일단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회사는 부도가 나고 사장을 비롯한 임원의 경영권은 정지된다.

'쿠데타' 가 일어나게 된 계기는 창업주 3세인 고토 사장과 종업원들의 의견충돌. 회사가 2년 연속 적자를 내자 고토 사장은 임금삭감.사옥매각 등 구조조정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책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종업원들이 스스로 '회사재건위원회' 를 구성, 지난달말 고토 사장과 철야담판을 벌여 법원에 회사갱생 신청을 내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고토 사장이 경영권을 의식, 이를 거절하자 종업원들은 해고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리에 쿠데타작전을 짰다는 것. 일본의 회사갱생법에 따르면 종업원들은 회사갱생을 신청할 자격이 없다.

회사 자본금의 10% 이상에 해당되는 채권을 지닌 채권자나 지분 10% 이상의 주주, 또는 해당기업만이 신청할 수 있다.

이때문에 종업원들은 지난해 보너스 3억8천만엔이 밀려 있다는 점을 들어 채권자의 자격으로 신청을 냈다.

당황한 고토 사장은 뒤늦게 종업원들에게 대화를 제의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고토 사장은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종업원을 적대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 말했다.

한편 종업원측은 사장과의 대화를 중단한 채 회사재산을 처분해 빚을 줄이자는 계획을 관리인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닛코덴키의 경영정상화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은행들의 채권유예나 외자유치가 있어야 가능한 형편이다. 일단 쿠데타는 일어났지만 성공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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