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조훈현-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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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조9단, 强手로 벼랑끝 줄타기 즐기고…

제3보 (40~64) =16세의 이세돌은 거칠다. 1백점짜리를 잘 두지만 종종 빵점짜리를 둔다. 전보에서도 불쑥 손이 나가 曺9단의 묘수를 당하고 말았다.

좋은 수를 마다하고 80점짜리로 근근이 버텨나가던 어린 시절의 이창호와는 영 다른 모습이다.

흑의 고전은 명백한데 이 장면에서 백의 최선은 어디일까. '참고도' 백1로 가만히 넘는 수였다. 이렇게 넘는 것은 적극적인 曺9단의 기풍에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넘어두면 흑은 2로 달아날 마음조차 나지 않는다. 2로 달아나더라도 아무 노림도 없이 일방적으로 쫓기는 형국이라 흥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대신 백은 몹시 두터워 마음편하게 바둑을 둘 수 있으니 얼마나 여유가 있는가. 조훈현이란 사람은 그러나 벼랑끝 줄타기를 즐기는 사람. 밋밋한 것은 싫고 극한상황에 도전해 자신의 능력과 의지를 시험해보고 싶어한다. 40은 지나는 길에 던져본 수. 패싸움을 의식한 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45까지 잡히자 일단 손해가 크다. 이 손해가 심리적으로 曺9단에게 강수를 재촉했을 가능성이 크다.

46의 강수는 이래서 등장했다. 47엔 48의 패가 예정 코스. 하지만 흑이 만패불청하고 연결해 버리자 백은 크게 엷어졌다. 그 엷고 두터움은 '참고도' 와는 비교도 안된다.

백의 강수는 너무도 간단히 실패로 끝났다 (54=백△, 55=48의 곳).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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