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초등교사들 13년째 '몰래 장학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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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영등포구대림동에 있는 영남중 2학년 金성훈 (14.가명) 군은 3월초 공납금 통지서를 받고 깊은 수심에 잠겼다.

아버지는 3년전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힘겹게 파출부 일을 하면서 두 동생과 어려운 생계를 꾸려가는 상황에서 15만원은 어린 金군의 눈에도 부담스러운 액수. 지난 학기엔 어머니가 친지들에게 사정해 임시변통한 돈으로 겨우 학비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지난달 26일 담임선생님은 金군을 따로 불러 점심시간때 교장실을 찾아가 보라는 말을 전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교장실을 찾은 金군에게 민흥기 (閔興起.57) 교장선생님은 15만원이 든 하얀 봉투를 건넸다.

"네 사정을 알고 선생님들이 마련한 돈이란다.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말씀드려라. " 이 돈은 이 학교 교사들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해 매월 박봉을 쪼개 마련한 '사랑의 장학금' .87년부터 계속 내려오는 전통이다.

지금도 이 학교에선 78명의 교사들이 월 20여만원씩을 모아 분기마다 네명의 학생들을 뽑아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金군은 뒤늦게 이런 사연을 알고 "선생님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 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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