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어디로 가나] 보름 못넘긴 원내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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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난기류가 정국을 또다시 휘감고 있다.

3.30 재.보선 이후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야의 기세 싸움으로 가파른 대립과 반목이 되풀이되고 있다.

여야는 2일 국회 본회의장에 동석하는 데는 가까스로 합의, '반쪽 정상화' 에는 성공했지만 언제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2일 이회창 (李會昌) 총재 주재로 열린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 회의는 강경투쟁을 대여 전략의 기조로 결정했다.

李총재는 "총재회담 때 재.보선에서 관권.금권이 판치는 선거가 돼서는 안된다고 합의한 바 있는 데도 이번 선거가 부정.타락선거가 됐다" 며 "여권은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관용 (朴寬用) 부총재 등 다른 참석자들도 강경입장 일색이었다.

한나라당은 결국 3일 총재단 회의와 민주수호투쟁위원회를 열어 부정선거 규탄집회의 방식을 결정키로 했다.

전국 6개 권역별로 대규모 장외 규탄집회를 갖거나 국정보고대회 형식으로 치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李총재로선 '사실상 패배' 로 자체 규정한 재.보선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비주류는 물론 측근에서까지 제기된 선거 책임론을 잠재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권은 한나라당이 예견됐던 수순을 밟고 있다는 판단 아래 정면대응, 무력화시킨다는 복안이다.

재.보선에서 확인한 지지도의 우위를 바탕으로 차제에 야당 버릇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이날 국민회의 당3역회의에서는 한나라당 장외집회를 '당내 불만 진화용' 으로 규정했다.

"한나라당은 정상적 정당 운영과 관리가 불가능한, 패배주의에 빠진 정당" 이라는 성토도 나왔다.

여권은 더 나아가 세풍 (稅風) 사건의 주역인 서상목 (徐相穆) 의원 체포동의안의 회기 내 강행처리 방침을 공개하면서 맞불작전을 펼치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소속 의원 1백59명 중 신병치료 중인 2명을 제외한 1백57명 전원에게 '6, 7일 본회의 출석령' 까지 내렸다.

이래저래 지난달 17일 여야 총재회담을 계기로 조성됐던 대화 무드는 보름도 못가 흐려지는 느낌이다.

물론 여야간 대치상황이 해소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3일 국회 본회의 불참 방침을 철회하고 추경예산안을 처리키로 합의한 것은 일단 눈여겨볼 대목이다.

강경투쟁 일변도의 당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여권도 상반기 중 정치개혁 입법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徐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와 부정선거 규탄집회에 대한 여야의 집착 때문에 정국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완전히 가시기까지는 상당한 진통과 곡절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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