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에 질린 개인들 직접투자 나섰다 쓴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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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국내 증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지난해 10월 24일 코스피지수는 938.75까지 하락했다. 이때가 바닥이 었다. 그 이후 주가는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요즘은 1600선을 웃돌고 있다. [뉴시스]

“지수만 오르면 뭐하나. 정작 내 주식은 안 오르니…. 모두 이런 고민이시죠?” “네.”

지난 주말 서울의 대우증권 역삼지점. 투자설명회 강사로 나선 이 지점 윤제영 차장의 물음에 투자자들은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윤 차장은 “개별 상담을 해 봐도 올해 직접 투자로 돈 벌었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증시가 금융위기 이전으로 돌아갔다지만 개인 투자자에게는 여전히 한겨울”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에 따른 펀드 수익률 폭락은 투자자들을 단단히 화나게 만들었다. 펀드에 실망한 일부 투자자는 직접 돈을 들고 증시로 뛰어들었다.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맡겨 놓는 예탁금과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린 신용잔액은 3월 증시가 상승세로 돌아선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펀드에 대한 불신이 반영됐다는 뜻으로 증권가에선 이를 ‘앵그리 머니(Angry Money)’라고 부른다.

하지만 앵그리 머니의 반격 결과는 신통찮다. 금융위기가 펀드·주식 투자자들에게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다는 얘기다. 단적인 예로 올 들어 지난 주말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순매수 규모가 가장 컸던 종목인 현대건설의 경우 연초 이후 상승률은 2.63%에 그친다. 개인들이 많이 사들인 두산중공업(2.70%)·SK텔레콤(-16.99%)·현대중공업(-5.26%)·KT&G(-14.03%) 등도 수익률이 부진하다. 개인 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20종목엔 최근의 주도주인 정보기술(IT)·자동차 관련주는 단 한 종목도 없다.

외국인들의 순매수 상위 종목이 삼성전자(70.07%)·포스코(21.58%)·신한지주(54.89%)·현대차(172.15%)·하이닉스(210.45%)로 채워진 것과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2005~2007년 상승장에서 소외됐던 ‘못난이 삼형제’인 IT·자동차·금융이 외국인의 집중 매수로 새로운 주도주로 떠오르는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흘러간 주도주’를 공략한 것이다.

과거에는 외국인들이 핵심 ‘블루칩’을 사들여 상승 장세가 나타나면 기관들이 가세해 한 단계 아래의 ‘옐로 칩’들을 사들이면서 상승 종목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엔 이런 패턴이 확 뒤틀렸다는 설명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펀드에서 자금이 빠지며 돈이 부족해진 기관들이 오히려 핵심주를 사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바닥에서 주식을 사 모은 외국인들이 유리한 위치에서 일부 차익 실현을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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