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의 글쓰기]'떼한민국'펴낸 중앙대 김영봉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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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넥타이를 맨 근엄한 모습으로 '경제체제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주의경제의 제도와 변화' 등을 썼던 김영봉 (金榮奉.55.중앙대.경제학) 교수가 평상복 차림으로 펜을 내갈겨 '떼한민국' (북파크.7천5백원) 을 펴냈다.

'떼' 자를 놓고 몇번이나 망설였지만 "이대로는 나라가 절대 흥 (興) 할 수 없다" 는 신념 하나로 용기를 냈던 것이다.

金교수의 타는 심정은 "남의 일로만 여기던 사건이 어느날 예고 없이 찾아와 당신의 일로 둔갑한다" 는 말로부터 표출된다.

과연 그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리고 그는 왜 거기서 '떼거리' 방어.보호본능과 '천민.정실 자본주의' 수준이 아닌 '떼거리 범법자 자본주의' 의 치부을 보고 말았을까.

사연은 자신이 젊은 시절 박사학위를 받았던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교수로 1년을 보내고 온 91년 2월 서울 남현동 예술인마을 본인 소유의 단독주택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미 집 주변은 다세대 빌라건축 붐으로 만신창이. 집을 팔 (賣) 수도 살 (住) 수도 없어 결정한 빌라공사 이후 그는 건축업자와 사채업자의 횡포에 휘말리고 결국엔 3년에 걸친 소송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횡포한 무법자에게 수없이 당하면서도 제대로된 대응은커녕 '해코지가 무서우니 참자. 아이들도 있고 하니…' 라고 자위해야 했던 사정을 이해하겠는가. " 여기에선 자신이 사랑하는 국가조차도 사회정의의 실현은 차치하고 상식 수준의 보호기능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무책임했다.

그는 이런 상념을 72년부터 약 2년간 상공부 수출계획과장으로 재직하던 기억으로 이어가고 있다.

"여간 강심장이 아니면 버티질 못한다. 위로부터의 떨어진 부당한 금융지원 압력, 함께 고생하는 공무원을 위한 자금조달 등…불법.탈법에의 동참을 강요하는 시스템이었다. 그 때도 절차간소화위원회를 만들어 난리를 쳤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원상태로 돌아오는 '시늉' 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국개발연구원 (KDI) 으로 돌아왔다. "

이에 金교수는 극단적으로 검사.경찰.당국의 인맥을 통해 일을 해결하는 것과 깡패등 해결사를 동원하는 것과는 차이점이 뭔지를 묻는다.

국가가 반칙행위자에 대해 철저한 응징을 가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약탈 체제' 로 전락할 뿐이라는 그의 경고는 섬뜩할 정도다.

'테오리아' (이론)에 머물던 백면서생 (白面書生) 이 '프락시스' (실천) 의 도전 앞에서 이처럼 무기력했다.

동료학자 서헌제 (중앙대. 법정대학장).김병주 (서강대. 경제학).박승 (중앙대.경제학).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 교수와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박사 등이 응원군을 자처한 것도 다들 金교수의 악몽이 자신의 일 같았기 때문 아닐까.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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