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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부 ‘혼인빙자간음죄’ 폐지 의견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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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혼인빙자간음죄는 수십 년간 지속된 여성의 성에 대한 시각과 국가 형벌권의 한계에 대한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헌법재판소가 2002년 합헌(재판관 7대 2) 결정을 내린 사건에 대해 7년 만에 다시 공개 변론을 여는 배경이다.

헌재는 7년 전 합헌 결정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남녀 간의 성에 대한 신체적 차이, 성 행위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다르다”고 밝혔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다”는 게 당시 헌재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여성부는 2002년 헌재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혼음빙자간음죄는 ‘남녀평등’을 못 박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여성부 조진우 정책총괄과장은 “지금은 남성도 언제든지 결혼을 빙자한 여성에게 사기를 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형법 304조의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라는 표현에도 여성부는 반대하고 있다. “여성의 정조와 처녀성을 중요시하는 시각이 내포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소원 청구인인 임모씨를 대리하는 황병일 변호사는 “남존여비 시대를 전제로 한 원시적인 법령”이라며 “50여 년 전 일본 형법 가안에서 마련됐다가 채택이 안 된 조항을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혼인빙자간음을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루마니아 등 3개국에 불과하다는 게 황 변호사의 설명이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혼인빙자간음죄가 처벌의 대상이 아니고, 일부 주에서만 간통죄와 함께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기소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독일은 1969년에 폐지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비밀 등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지만 과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유림단체도 같은 입장이다. 유림단체인 담수회의 전홍식 사무처장은 “전통적으로 혼인은 신성한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인데 이를 저버리는 행동은 처벌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 통념과 자연의 섭리로 볼 때 남자보다 여자가 혼인빙자간음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더 큰 만큼 법이 존재해야 한다. 여성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여성부의 위헌 의견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합헌 결정이 난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은 핵심 쟁점을 공유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이불 속 문제’까지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간통죄는 지난해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로 위헌 의견이 더 많았지만 정족수(6인) 미달이었다.

김승현·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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