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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직 전문기자 리포트]분산된 교통시설관리 일원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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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또 틀렸나" . 정부 조직.기능개편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교통전문가들이 허탈해하는 소리다.

"이번에는 교통안전시설 설치.운영업무가 제 집을 찾을 줄 알았는데…. " 기획예산위원회도 안타까워한다.

담당자는 "5월쯤 2차 기능조정때 보자" 고 하지만 목소리엔 영 자신이 없다.

차선을 누가 긋고, 신호등을 설치할 교차로.설치방법 등을 누가 결정하는 게 옳은가.

미국.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은 도로관리청 (건설교통부.지방자치단체) 이 하고, 일본은 경찰청이 한다.

우리는 도로관리청이 경찰청에 권한을 위임하는 형태다.

경찰청이 시설 설치관리에 필요한 예산을 매년 지자체에 요구하면 지자체는 필요한 사업인가 따져보고 적당하게 예산을 배정하는 시스템이다.

누가 맡든 잘만 하면 된다.

그러나 당연히 설치돼야 할 곳엔 안전시설이 없는가 하면 불필요한 곳에 설치하거나 형식적으로 설치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유지관리가 비효율적이거나 아예 안해, 있는 시설조차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또 계획.설계지침도 없고, 설치지침도 세부적으로 명확치 않다.

안전시설의 성능.설치기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어 관리청별로 임의로 제품을 선정, 설치해 운전자 혼란을 초래하고 영세업체가 외국제품을 들여와 단발성으로 설치하는 시스템이다. 안전시설 미흡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경찰청은 "지자체가 돈을 적게 줘서 그렇다.

97년엔 신청액의 54.0%, 98년엔 45.3%만 받았다" , 지자체는 "경찰이 전문성이 없기 때문" 이라며 서로 책임을 미루기 일쑤였다.

때문에 서울의 전자신호기 설치는 계속 지연되고, 신호등은 렌즈탈색.노후전구.난반사 등으로 광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유지관리를 잘 한다는 미 로스앤젤레스시의 경우도 신호기중 24%가 운영상 기능장애를 일으키고, 호주 시드니는 신호기당 월평균 1.5회 기능장애가 일어난다는 보고를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통계조차 없다.

상당수 도로를 매년 페인트 칠을 못해 차선이 마모되거나 탈착돼 시인성이 저하되고, 융착식 도료에 비해 반사성능 2배, 내구성도 4배인 고휘도 노면표시는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낸다.

기획예산위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며 민간전문가에게 조직진단을 의뢰했다.

그러자 난처한 대답이 나온 것. 먼저 건설교통부 조직을 진단한 한국생산성본부.가립회계법인팀은 "비전문기관인 경찰청에서 신호기 설치.조작, 차선 설치 등을 하고 있어 도로소통능력이 떨어진다.

권한과 책임이 분산돼 비효율적이다.

도로안내 표지판과 교통안전 표지판이 서로 달라 운전자에게 혼란만 준다" 며 안전시설 설치관리 및 교통관제업무를 건교부로 이관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 서울대 행정대학원.대우경제연구소 등 경찰청 조직진단팀은 "교통안전시설의 설치 운영은 교통규제기능의 중요한 부분이다.

현행체제를 유지하되 관련기관간 원활한 업무협조체제를 구축하라" 며 경찰청 손을 들어줬다.

기획예산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이번 개편방안엔 이 문제를 아예 거론조차 안했다.

다만 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만은 분명하다.

소송천국인 미국 얘기지만 교통사고 사망.중상을 당한 청구소송의 41%가 교통안전표지 결함을 걸고 넘어진다.

우리나라도 안전시설 미흡으로 인한 국가배상판결이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연방도로청은 안전시설의 적절한 설치.개선만으로 사망자수를 27%나 줄일 수 있다고 했고, 우리나라도 교통사고 사망자의 10~15%는 안전시설미비 때문일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이젠 결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에 전적으로 맡겼으면 한다.

그래야 예산도 늘리고, 전문가도 제대로 확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시설을 누가 책임지는 게 시민편의를 극대화하는 방안일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음성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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