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안국사 지산스님 10년째 불우아동 아버지役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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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누군가는 거두고 돌봐야할 아이들을 위해 남은 평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 지난 17일 오후7시 의정부시호원동223 54평 규모의 패널로 만든 2층짜리 조립식 가건물. 입구의 '통일안국사' 라는 팻말을 보고서야 이 곳이 절인 줄 알 수 있다.

법당 아래쪽인 1층 27평 공간에는 저녁식사를 방금 마친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스님의 팔에 매달린 채 장난을 치고 있다.

옷에 오줌을 싼 3살바기 남자아이가 보채자 스님은 금방 옷을 갈아 입혔다.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주랴, 기저귀를 갈아주랴, 산수문제를 풀어주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헤진 승복차림의 스님은 한번 찡그리지도 않고 온화한 표정이었다.

이 절의 주지 지산 (智山.48) 스님은 지난 90년부터 10년째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키우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자 남은 돌이 갓 지난 여자아이를 맡은 후 점점 식구가 늘었다.

지금은 돌배기에서 대학생까지 자식이 모두 13명에 이른다.

처음 스님의 품에 안겼던 여자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으로 자라 스님을 '아빠' 라 부르며 따르고 있다.

7년전 고교를 마친 뒤 이 곳에 들어온 장남 (26) 은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나온 뒤 2년 전 일본 도쿄대로 유학을 떠나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회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게 장남의 포부다.

스님의 하루 해는 짧기만 하다.

오전 4시에 일어나 불공을 드리고는 곧바로 자원봉사 할머니 (76) 의 식사 준비를 돕는다.

이어 텃밭에 나가 고추.상추를 돌보고 세탁기를 돌리고 집안 청소를 하다보면 한나절이 훌쩍 가버린다.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들쳐업고 병원에 달려가거나 간호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다.

"제대로 뒷받침이 돼주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요즘은 어려서부터 영어.컴퓨터.피아노.웅변.속셈 등 갖가지 과외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 자원봉사자 3명과 후원자 20명의 도움으로 살림을 이끌어나가는 그는 살림에 보태려고 1천평 부지에 손수 향나무 1천5백여그루를 길러 팔아왔다. 쌀이 떨어지면 용문사 등 인근 사찰을 찾아가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는 "사춘기 아들.딸들이 정신적 충격에 빠지지 않도록 보살피는데 각별한 정성을 쏟고 있다" 고 말했다.

지산스님은 "앞으로 50평 규모의 보금자리를 추가로 지어 오갈 데 없는 1백8명의 노인과 어린이들을 보살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 말했다.

0351 - 876 - 2235.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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