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항공사고 안나는게 이상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한항공 포항공항 착륙사고는 우리나라 항공 교통 수준이 얼마나 원시적이고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는 대한항공이 지난해 8월부터 두달동안 7건의 사고가 줄을 잇는 바람에 건교부로부터 '6개월간 국내선 15% 감축' 이라는 초유의 중징계를 받고 있는 기간 중에 다시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아직 직접적인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불시착 당시의 정황.탑승객 증언 등을 종합해 보면 이번 사고 역시 정비불량.배짱운항.조종미숙.열악한 공항 시설.나쁜 기상조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지방공항의 시설이나 입지 조건, 항공사의 비행 여건 등으로 보아 사고가 안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우선 이번 사고는 여객기가 1차 착륙시도에 실패한 후 재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전불감증에 의한 인재 (人災) 일 가능성이 크다.

재착륙 시도는 고도처리 미숙.속도조절 실패.코스 이탈.비행 불안정 등 조종사의 조종 미숙이 주원인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공항 주변에는 약간의 비바람이 불었지만 착륙을 포기할 이상기후는 아니었다는 공항측의 분석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한항공은 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1천5백억원을 들여 미국 델타항공과 항공안전 컨설팅 계약을 맺고 운항.정비 부문 등 대대적인 개선을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또 사고가 났다.

건교부도 20여명의 민관 합동진단팀을 구성해 6개월간 대한항공의 안전.정비.인사.기획 분야 종합진단을 실시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동안 관리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관계당국과 회사측은 최근 대한항공에서 사고가 빈발하는데 대해서도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밖에 우리나라 지방공항의 시설 개선도 서둘러야 한다.

지난해 11월 한국공항공단이 제출한 국감자료를 보면 공항에 설치된 관제시설 등 항공보안시설이 매년 4~5차례씩 최근 5년간 20여차례나 고장난 것으로 돼 있다.

우리나라 지방공항이 대부분 군용으로 출발하는 바람에 주변에 야산이 있고 활주로가 짧아 항공기 이.착륙에 불리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된 일이다.

입지조건이 나쁜데 시설.장비조차 열악하다면 사고가 거듭될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항공편은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항공사고는 엄청난 대형사고로 직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국적항공사들의 안전등급은 73.8로 세계 평균 (92.6) 이나 아시아 지역 평균 (85.4) 보다 크게 떨어지고 있다.

정부 당국은 세계화나 관광객 유치 등을 말하기 앞서 국민들이 마음놓고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근본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