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맥찾기도 자격증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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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기탐지평가사 시험에 참가한 한 응시자가 지난 14일 시험장에서 신주 막대기를 이용해 수맥이 지나는 곳을 찾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도곡동 숙명여고의 한 교실.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구리가 섞인 L자 모양의 금속 막대기 두개를 들고 한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평행하던 막대기가 서로 교차하자 그는 "수맥이 지나는 지점"이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수맥이란 물이 흐르는 길로 에너지 변화가 약하게 꾸준히 나타나 그 위에 오래 있으면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단법인 한국정신과학학회가 처음 실시한 '기탐지평가사'의 시험장면이다. 이 학회는 대중화된 수맥탐지 분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사 제도를 도입해 시험을 거친 사람에게 자격증을 주기로 했다.

학회 김인곤 부원장은 "수맥에 대해 기초 지식도 없는 사람이 300만~400만원씩 받고 사기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수맥 관련 사업이 대중화되고 상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시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격증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첫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30여명. 40여평의 교실 안에 표시된 35개 지점 가운데 큰 수맥이 지나는 곳을 찾는 것이 문제로 제시됐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정신과학학회 측은 시험 당일까지 시험장소를 비밀에 부쳤고, 정답도 시험을 마친 뒤 심사위원들의 회의를 거쳐 결정했다.

10년 이상 수맥을 연구한 심사위원들이 수맥으로 짚은 네 곳 중 두 곳 이상을 맞힌 응시자 20여명이 합격했다. 시험을 통과한 정지혜(55)씨는 "5년 전부터 꾸준히 수맥을 공부하다 이번에 응시했다"며 "수맥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겠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수맥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수만명에 이르지만 자신의 실력이 탄로날까 두려워 극소수만 시험을 치렀다"며 "앞으로 급수별로 시험을 세분화해 실력을 평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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