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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의 모스크바광장]가난한 이웃 챙기는 자선전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연금 생활 6년째인 로자 할머니 (62) .연금으로 월 5백루블 (약 3만원) 을 받는 그녀는 옹색한 생활비에도 주머니 한쪽에 꼬깃꼬깃 접은 10루블짜리 지폐 2~3장과 50코페이카 (약 27원) 짜리 동전 10여개를 따로 챙겨둔다.

길거리에서 손을 벌리는 타지키스탄.체첸 등지에서 온 난민들과 상이군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외국 회사에 다니며 1천5백달러의 높은 월급에 외제차를 몰고 휴가는 인근 유럽으로 다니는 게오르기. 그는 차 속에 별도로 동전통을 놓고 다닌다.

출퇴근 시간 때마다 교통정체 구역에 나타나 손을 벌리는 난민들에게 집어주기 위해서다.

벨로루시에서 온 여대생 레나. 본인도 학비가 모자라 식당에서 월 6백루블을 받고 접시를 나르지만 지하철에서 어린애가 손에 '파마기체 (도와주세요)' 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5루블이 됐든 50코페이카가 됐든 집어준다.

경제난과 내전, 혼란스런 정국 등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활도 찌들대로 찌들어 있지만 러시아인들은 이처럼 난민 및 빈민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1, 2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그 후의 숱한 사회혼란을 겪으면서 이러한 난민들 중에서 나중에 사회와 인류에 기여한 위대한 천재들이 탄생한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엔 '천재도 난민이 될 수 있다' 며 자선을 호소하는 포스터가 심심치 않게 나붙는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집어주는 동전 한푼이 아인슈타인 (물리학자) 이나 누레예프 (무용가).디트리히 (배우) 등과 같은 난민출신 천재들을 길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매우 만족하는 것 같다.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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