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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유민기념강연회] 토론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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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석학의 강연회에는 송자 전 연세대 총장,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 이영백 한국물리학회장,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등 300명이 참석했다. 세종과학고의 교사와 학생이 단체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강연이 끝난 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의 사회로 토론이 있었다. 여성 물리학자인 한나라당 박영아(서울 송파갑) 의원과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다음은 토론과 질문·답변.

▶김영희 대기자=마스카와 교수의 강연을 듣고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못 타는 이유가 유치원 때부터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웃음)

▶마스카와=오해하면 안 된다. 오늘날의 교육환경은 내가 자랄 때와 분명히 다르다. 그때는 나중에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일등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등학교·중학교에서 ‘너는 안 된다’는 낙인이 찍힌 아이는 일어설 수 없는 사회다. 꼭 1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낙오자라고 느끼고 연구를 포기하지 않을 정도의 지도는 필요하다.

▶오세정 교수=동경과 꿈, 로망을 강조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독창적인 연구도 강조했는데 우리는 너무 답안 푸는 것에 익숙한 인재를 키우지 않았나 싶다. 자기 나름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유학 가서 배운 것만 반복하는 식이다. 노벨상은 몹시 어려운 문제를 풀어서 받기도 하지만 남이 안 하는 것을 해서 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표하는 논문 수가 세계 10위다. 논문 수가 이만큼 많으면 새로운 분야를 다루는 논문도 꽤 될 것이다. 노벨상을 20년 안에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영아 의원=노벨 과학상 수상자 중 여성은 2~3%에 불과하다. 여성 과학자들은 롤 모델이 적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 과학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

▶마스카와=대학원 동기 중에 오차노미즈대 총장으로 있다가 최근에 정년 퇴임한 고 미츠코 박사가 있다. 내가 고 박사의 얘기를 꺼낸 이유는 여성 과학자 문제를 푸는 데는 연구자 자신의 결의와 국가의 결심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06년 탁아소를 만드는 등 ‘여성 연구자 지원 모델 육성사업’을 사립대학을 포함한 전국 대학에서 시작했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인데 활용하지 않으면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사회의 진보에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면 사회는 조금씩 움직일 것이다. 여성 과학자들이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40대 남성=한국에서도 노벨 과학상이 나와야 한다. 조언을 부탁한다.

▶마스카와=너무 노벨상에 연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에서도 자꾸 노벨상, 노벨상 하고 강조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벨상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나도 노벨상을 받겠다고 연구를 한 것이 아니다. 연구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이다. 연구를 하다 보니 노벨상이 따라온 것이다. 한국 연구자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자마다 강점과 약점이 있다. 자신의 장점과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연구자층이 두터워지면 상도 따라올 것이다.

▶과학고 학생=동경심을 가지고 물리를 택했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 선생님 같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스카와=동경심을 가지고 공부해 나가는 것은 기쁜 일이다. 과학은 거대해지고 있는데 그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취지로 질문한 것 같다. 과학이 거대화하더라도 역시 그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살린 자기만의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톱 리더가 돼 모두를 이끌면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측정기계를 만들어 팀에 공헌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과학이 된다고 생각한다. 현대 과학에선 “네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실험이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톱 리더가 돼 호령하는 모습이 보기엔 멋지지만 그것만으로 사회가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자신의 개성을 고려할 때 내가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맨 위에 있는 사람이 멋져 보이지만 아랫사람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는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과학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포인트다.

토론과 질문이 끝나자 많은 사람이 마스카와 교수 주변으로 모였다. 노교수는 곧바로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에 파묻혔다. 권태균(16·세종과학고 1학년) 군은 “자기 분야에 대해 동경을 가지라는 말씀이 감동적이었다”며 “물리학자가 꿈인데 오늘 강연을 듣고 많은 용기를 얻고 간다”고 말했다. 고교 물리교사인 최대중(33)씨는 “당장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도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강연회를 마친 뒤 마스카와 교수는 한승수 총리를 예방했다. 한 총리가 “137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하기 이전엔 무엇이 있었는가”라고 묻자 마스카와 교수는 “그에 관해 허수를 동원해 설명하는 등 이론은 많지만 데이터가 부족해 증명은 안 된다”고 답했다.

구희령·임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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