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1년연기]뒷걸음치는 의료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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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 7월부터 실시 예정이었던 의약분업이 4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1년 연기로 결정됐다.

현재 여야 입장을 볼 때 보건복지위 상임위나 본회의에서도 연기로 결론날 전망이다.

이로써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정책이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과 관련 이익단체의 로비에 밀렸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으며, 의약분업과 연계된 다른 의료개혁 조치들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국민건강 측면에서 볼 때 의약분업 연기는 김모임 (金慕妊) 보건복지부장관의 표현대로 '국민에게 불행한 일' 이다.

의약분업을 실시하지 않아 항생제를 소화제 먹듯 남용한 결과 페니실린이 듣지 않는 폐렴구균, 메티실린으로 치료불가능한 황색포도상 구균 (패혈증.골수염 등 유발) 이 세계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프랑스 등 의약분업 실시 국가는 폐렴구균에 대한 페니실린 내성률 (耐性率) 이 평균 12%인데 비해 홍콩.일본.한국 등 의약분업 미실시 국가의 내성률은 평균 52% (한국은 84%) 로 4.3배나 높다.

이처럼 각종 항생제의 '약발' 이 듣지 않게 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의사의 처방없이 전문의약품을 약국에서 손쉽게 살 수 없도록 의약분업을 도입하는 것 외에 다른 '처방' 은 없다.

의약분업 연기로 인해 전문의약품의 오.남용, 병.의원의 주사제 오.남용, 약값의 거품, 의약품 납품비리 등 해결도 미뤄지게 됐다.

총의료비에서 차지하는 약값.주사약값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현실도 시정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96년 우리나라 총의료비 중 약값의 비율은 31% (일본 29%) 로, 의약분업을 실시하는 미국 (11%).영국 (16%) 보다 2~3배나 높았다. 또 의약분업과 연계해 실시키로 한 소독제.파스 등 단순의약품의 슈퍼판매제나 약국 의료보험 폐지 등도 함께 순연되게 됐다.

일부에선 이번 연기를 계기로 의약계가 내년 7월 의약분업 실시에 적극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확실하게 형성된다면 연기가 '묘약' 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의약분업은 국민이 병이 났을 때 병원과 약국을 오가는 불편을 참아줘야 한다는 것 외에 의사.약사의 자발적 참여가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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