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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계기로 일터 나간 영국 여성, 보답으로 참정권 획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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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여성들이 무기공장에서 포탄에 화약 채워 넣는 일을 하고 있다.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1914~18)을 치를 때 여성들은 인력난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 1918년 7월 당시 임금 노동자로 일한 여성은 731만 명을 넘었다. 여성들은 선반을 조작하고 트럭 엔진도 정비했다. 가죽공장·설탕정제소·고무공장에서 일했고 심부름 다니던 소년들을 대신해 배달 소녀들이 등장했다. 10만 명 이상이 농경부대에 지원해 농산물 수확에 기여했다. 군용 말과 노새도 훈련시켰다. 여성들은 경찰·버스 안내원·지하철 경비원 등 남성들의 영역에 진출했을 뿐 아니라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어 술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입대를 선택한 여성도 있었다. ‘여성육군지원군단’은 사무원·전화교환원·요리사·웨이트리스·운전사 등으로 일하면서 전쟁터로 빠져나간 남성들의 빈자리를 메웠다. 전쟁이 끝날 무렵 여성육군지원군단 대원은 4만 명에 이르렀다. 간호사로 근무하는 여성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무보수 의용군지원부에 소속돼 일하거나, 응급처치 간호의용군으로 봉사했다. 간호사들도 어뢰를 맞거나 체펠린 비행선의 공습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더 용감한 여성들은 최전방에서 싸울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었다.

전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했던 여성들은 포탄에 폭약을 채워 넣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카나리아’라고 불렸는데 폭약의 화학물질이 손과 얼굴을 노랗게 물들였기 때문이다. 런던 인근 울리치 무기공장의 경우 전쟁이 시작될 무렵 10명의 여성이 고용돼 있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2만4000명으로 늘었다.

영국 여성들은 전쟁 기간에 중대한 공헌을 했고, 그것은 견고한 성(性)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후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그들의 공헌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1918년 2월에 선거권이 획기적으로 확대돼 여성에게 최초로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1832년의 제1차, 1867년의 제2차, 1884년의 제3차 선거법 개정에서 남성 선거권이 확대되었고, 1918년 제4차 선거법 개정에서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처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이다. 20세 이상 남녀가 평등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은 1928년의 제5차 선거법 개정에 의해서였다. 영국 남녀는 100년간의 험난한 투쟁 끝에 이 값진 권리를 얻어냈다. 1948년 선거권을 ‘선물’ 받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