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그녀에게 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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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만 시작했다 하면 얼굴 보기 힘든 친구. 이 친구가 오랜만에 먼저 만나자고 연락하고는 우울한 얼굴로 약속 장소에 앉아 있다면, 그 다음 나올 말은 짐작이 가능하다. 바로 “나 엊그제 채였어”. 위에서와 같이 남녀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관계가 끊겼을 경우 ‘채이다’는 말을 종종 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차이다’고 해야 한다.

“공을 차다” “상대편 선수를 발로 차다” “애인을 차 버렸다” 등에서 쓰인 ‘차다’에 피동형 접사 ‘-이-’를 붙여 만든 단어가 ‘차이다’다. ‘차이다’의 준말이 ‘채다’이므로, ‘채다’에 또 ‘-이-’를 붙여 ‘채이다’고 하면 이중 피동이 된다.

따라서 “발부리에 차인(챈) 돌” “정강이를 차여(채어) 다쳤다” “애인에게 차이고(채고) 난 직후” 등처럼 ‘차인/차여/차이고(챈/채어/채고)…’와 같이 활용해야 한다.

그럼 ‘차이다(채다)’를 과거형으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얼마 전 애인에게 채였다”에서와 같이 ‘채였다’를 쓰곤 하지만 ‘차이다’에 ‘었’을 붙여 ‘차였다’ 혹은 ‘채다’에 ‘었’을 붙여 ‘채었다’고 하는 게 바르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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