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불공정한 미사일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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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비정하지 않은 전쟁은 없지만 그나마 전쟁이 '공정' 했던 때는 칼과 창을 쓰던 시대라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힘이 약하면 검술을 연마하거나 달리기라도 익혀 멀리 도망치면 됐다.

오늘날의 약자는 달아나 숨을 곳도 마땅치 않다.

군사위성과 첨단무기 탓에 땅속마저 안전하지 못하다.

호전적이던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 때보다 빌 클린턴 현대통령 지도하의 미국이 더 많은 전쟁.전투를 치른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학자들이 있다.

미 과학자연맹의 존 파이크 우주정책부장은 "정밀유도무기 (PGM) 때문에 정치지도자들은 전쟁돌입이라는 결단을 보다 쉽사리 내리게 됐다" 고 우려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단추를 눌렀던 이라크 공습이 한 예다.

약소국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지만 강대국으로서는 처음부터 시간.공간적 범위를 짜놓고 벌이는 '기획 (?) 전쟁' 인 만큼 자국민 여론과 국제사회의 견제에만 신경쓰면 된다.

정밀유도무기가 선호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국 병사가 희생될 염려가 거의 없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점이다.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라크 공습은 더 이상 정치생명을 거는 모험이 아니다.

클린턴의 새로운 성추문이 폭로되면 이라크가 가장 긴장한다는 뼈 있는 농담도 그래서 나왔다.

'전쟁은 외교의 마지막 수단' 이라는 상식은 이제 미국에는 통하지 않게 됐다.

강대국의 남은 걱정거리는 타국이 자기 나라에 미사일을 쏠 가능성이다.

이달초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회의에서 미국측은 '북한은 미국의 대량보복을 피하기 위해 유사시 비핵 (非核) 국인 캐나다에 가장 먼저 미사일을 발사할 것' 이라는 시나리오를 캐나다에 전했다고 한다.

알래스카.미 서부해안.캐나다로 이어지는 '북 미사일 표적론' 이 북한과 아예 코를 맞대고 있는 한국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심각하게 따져볼 때다.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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