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융개혁 이제부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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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은행이 제일은행에 이어 홍콩 상하이은행그룹 (HSBC)에 팔려나감으로써 이달 초 충북은행의 합병명령을 포함해 환란 (換亂) 이후 계속돼 온 부실은행의 정리작업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금융구조조정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부는 보험.신용금고 등 제2금융권의 구조조정을 상반기내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은행구조조정도 하드웨어만 마무리했을 뿐 소프트웨어의 수술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엄청나다.

향후 2~3년간은 옆길을 쳐다보지 말고 구조조정에 매진해야 한다는 외국기관들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지금이야말로 출발선에 다시 설 때인 것이다.

서울은행의 매각은 제일은행의 매각이 불러일으켰던 헐값처리 논란을 상기하면 기본골격은 비슷하지만 조건이 다소 유리하다.

우선 HSBC가 인수한 자산이 추가로 부실화될 경우 손실보전기간을 1년으로 제한한 데다 인수 뒤 5대그룹을 포함한 기업들의 여신도 마구잡이로 축소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해놓았다.

해외임자 찾기에 조급해 말많던 제일은행매각보다는 진일보한 셈이다.

그러나 서울은행의 매각에도 문제는 적지 않아 향후 떠안기로 한 부실규모가 클 경우 출혈논란이 예상되고 5대그룹 여신의 경우도 사업전망이나 경쟁력이 뒤진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과감히 돈을 회수하는 외국선진은행들의 관행으로 보아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소액주주 보유주식도 제일은행처럼 모두 유상소각키로 해 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측은 부실경영을 감시하지 못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동안의 금융여건이 과연 소액주주들이 책임질만한 것이었는가.

서울은행의 매각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 경제의 신인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

외국의 선진금융기법이 도입됨으로써 국내 은행들에 자극을 주고 이를 통한 국내은행들과의 건설적 경쟁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이헌재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미국계 투자기관인 뉴브리지와 유럽계 은행인 HSBC가 국내시장에 본격 진출함으로써 미국.유럽의 선진금융기법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서울은행의 매각이 가져올 가장 큰 효과는 은행의 본격적 자율경영시대를 열어 관치금융에 제동역할을 가져오게 한다는 점이다.

금융개혁과정에서 불가피하다지만 대다수 은행들이 정부의 손아래 놓임으로써 오히려 관치금융 폐해는 한층 더 우려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은행구조조정은 이제 가닥을 잡은 데 불과하다.

정부가 부실구덩이에 떨어진 은행들에 국민의 세금으로 뒷돈을 대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막대한 부실을 초래한 금융관행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경쟁력있는 금융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혹독한 구조조정만이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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