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의 지하철 광고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손꼽아 기다리던 서울지하철 9호선이 지난 7월 24일 마침내 개통됐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했던 서울 강남과 강서권을 연결해 주는 이른바 ‘골드 라인(황금 노선)’으로 통한다. 이동시간이 크게 줄고 첨단 역사(驛舍)를 갖춘 까닭에 이용자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뜨겁다. 덩달아 주변 상권까지 들썩이고 있다.

국회의사당역의 ‘텅빈 광고판’에 눈길
지하철 9호선의 쾌속 질주와 함께 열차가 정차하는 각 역사들 역시 ‘황금 광고판’들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광고판에 등장하는 업종도 건설에서부터 유통, 금융, 심지어 언론이나 병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화려한 이미지와 눈길끄는 문구로 승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역사 내 벽면광고판이 모두 비워져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국회의사당역이다.마치 광고를 준비하고 있는 것 처럼 넓지막한 광고판 한 구석에 조그마한 그림과 해당 기업의 CI만 새겨져 있다. <사진>

혹시 광고효과가 낮아 뒤늦게 해당 벽면이 팔린 건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역은 여의도의 수많은 금융회사는 물론 국회와도 가까워 유동인구가 상당히 많은 곳이다. 광고 효과 역시 좋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국회의사당역의 벽면 광고는 모두 비워져 있을까?

해당 기업은 이렇게 답한다.“광고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예요. 현재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완성된 광고입니다.”

엉뚱하게 시선 끄는 비운 광고 시도
이처럼 다소 엉뚱한(?) 광고를 한 업체는 어디일까? 바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그리고 현대커머셜이다. “광고로 꽉 찬 세상, 잠시라도 비워드리고 싶었습니다”라는 게 이들 업체의 생각이었다.

밤이 되면 거리엔 눈부신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TV에서는 화려한 방송 프로그램이 쉴새없이 흘러나온다. 잠에서 깬 순간부터 다시 잠에 드는 순간까지 사람들은 수많은 시각적 자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끊임없이 눈길을 사로 잡으려는 광고는 더욱 자극적이다. 이런 현상들은 때론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종의 ‘공해’로 변한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은 이 번 광고를 통해 “광고 속 빈 공간을 보면서 각종 이미지가 무차별적으로 범람하는 현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따라서 광고판에 이미지나 문구를 새겨 넣기 보다 시각적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제거하는 충격적인(?) 방법을 택했다. 직접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다 본질적인 부문을 드러내는 역설의 미학, 이것이 바로 이들 세 기업이 광고판을 비운 이유다. 이들의 남다른 생각은 9호선 여의도역과 노량진 역, 샛강역에서도 만날 수 있다.

< 성태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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