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부 독립 훼손하는 세력이 누구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엊그제 부임한 이흥복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취임식에서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세력에 관해 언급했다. 이 원장은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훼손하는 세력과 행태들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개혁성.진보를 내세운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의견이 법원에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은 사법부의 심각한 위기"라고 했던 전임 강병섭 원장의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사법권 독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위 법관들 입에서 왜 이런 말들이 끊임없이 나오는가. 한마디로 새 정부 들어 정권을 쥔 쪽에서 소위 진보적 시민단체를 동원하여 사법부 일을 간섭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고 제청자문위원회에 참여함으로써 대법원 구성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찬반 운동 등으로 특정 재판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 경우마저 없지 않다. 법원이 시민단체로부터 건설적인 의견을 청취해 재판에 반영하거나 제도를 개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눈치보기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언론에 보도된 어느 법관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시민단체의 잘못된 점에 대해 지적하려 해도 수구.보수.반개혁.기득권으로 매도당할까봐 할 말도 못한다"고 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체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사법권이 정치권력이든, 단체이든, 심지어 여론이든 외부의 어떤 세력에 의해 압력을 받는다면 사법부 독립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독립없이 법치는 불가능하고, 법치없는 민주주의란 포퓰리즘만이 극성을 부리게 되어 있다. 전형적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이 3권분립을 통해 사법부 독립을 지켜온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법부 역시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지켜가야 할 의무가 있다. 권력과 외부 세력 눈치나 보고 그를 통해 출세나 하려는 법관이 많다면 독립은 요원하다. 외부의 입김을 차단하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흔들림없이 재판할 때 독립은 지켜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