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시위, CIA.모사드 개입설로 새국면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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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전세계 쿠르드인들의 봉기를 촉발한 오잘란사태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오잘란 체포작전을 미국과 이스라엘이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들 나라로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시위 첫날 각국의 그리스 대사관을 공격했던 쿠르드 시위대들은 점차 미국.이스라엘의 해외공관으로 몰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선 미국대사관이 돌세례를 받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미 영사관 앞이 시위무대가 됐다.

캐나다 오타와에서는 터키대사관 앞에서 미국 성조기가 불태워졌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의 개입 여부가 확인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개연성은 높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터키 정보부 (MIT) 의 정보력이 신통치 않았던 게 문제다.

프랑스 르몽드는 17일 아프리카에 활동기반이 없는 MIT가 단독으로 작전에 성공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며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미 중앙정보국 (CIA) 이 직.간접으로 작전에 개입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영국 BBC방송도 "케냐 나이로비에 본부를 두고 있는 CIA가 오잘란의 피신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는 외교관의 발언을 소개했다.

나이로비는 CIA의 아프리카 활동거점. 특히 지난해 8월 나이로비 주재 미 대사관에 대한 차량 폭발물 테러 이후 미국은 나이로비 지부의 첩보능력을 대폭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워싱턴포스트까지 테러사건을 조사하던 CIA 요원이 오잘란의 그리스 대사관 은신 사실을 포착, 터키 정부에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모사드 역시 지난해 11월 오잘란의 모스크바 도착 사실을 휴대전화 감청을 통해 포착, MIT에 알려주는 등 오잘란의 행방을 추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잘란을 둘러싼 미국.이스라엘.터키 3국간의 전략적 이해 역시 양국의 개입가능성을 두텁게 하는 요소다.

미국은 대 이라크 공습기지로 터키의 인시르닉 공군기지를 사용하기 위해 터키의 지지가 필요한 실정. 제임스 폴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터키군이 쿠르드 반군 소탕을 위해 이라크 북부로 진입한데 대해서도 "테러리스트에 대항하기 위한 터키 정부의 자위권을 지지한다" 고 밝혔다.

이스라엘도 아랍권에 대항하기 위해 터키와의 긴밀한 관계가 불가피하다.

이들 3국은 96년 이후 합동군사훈련까지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재외공관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고 여행객 등에 대해 안전주의 경고를 전달하는 등 예방조치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의 기대대로 사태가 수습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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